경제시평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조건

2025-02-19 13:00:04 게재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1.6%로 내려오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대형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현재까지 제안되어 있는 추경안은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추경의 초점이 지나치게 단기적인 경기부양과 소비진작에 맞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총 35조원 중 24조원이 민생회복 분야에, 11조원이 경제성장 분야에 투입될 계획인데 민생회복 분야의 상당 부분이 전국민 대상 소비 쿠폰 지급이나 캐시백 혜택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이란 얘기다.

추경 필요성 인정되지만 단기적인 경기부양과 소비진작에 치우쳐

이러한 정책은 단기 성장률을 끌어 올리지만 지속적 효과는 없고 이후 성장률 둔화에 직면할 때 정책 당국이 다시 같은 정책을 사용하도록 유인해 정부부채 부담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버블 붕괴 이후 현금성 지원을 포함해 대규모 재정정책을 사용했던 일본의 경우 저성장은 해결하지 못하고 1990년 60%대였던 정부부채 비율이 2023년 250%까지 올랐다. 분모인 GDP의 성장은 장기적으로 1%대에 머물렀던 반면 분자인 정부부채는 꾸준히 늘었기 때문이다.

공공 일자리 확대를 통해 고용 창출을 도모하겠다는 계획 역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로 보긴 어렵다. 단기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공공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생산성을 높이거나 민간 부문의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러한 정책은 소비부양책과 마찬가지로 고용시장의 정부 의존도와 정부부채 부담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인구감소와 생산성 하락 등 각종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예산이든 추경이든 정부 돈을 쓸 때는 결국 민간 부문의 투자 촉진 등 장기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제안된 추경에서도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지원과 투자를 위한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만 더 많은 비중이 R&D 세액공제 확대 등 기업 지원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이 같은 기업 정책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지역혁신 선도기업 육성, 딥테크 스타트업 집중 육성 등 본 예산에 포함된 지역경제 활성화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시장에 대해서도 공공부문 고용 확대보다는 시장의 질적 개혁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글로벌 관점에서 경쟁력이 뛰어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기업의 인력 운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제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 대응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산업별 유연근무제를 확충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공공부문 고용 창출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전체 규모와 관련해서는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물론 국회예산처가 추정한 2024년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6.2%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빠르게 상승했고 2033년에는 57.7%까지 오를 전망이다.

여야, 정부 논의 통해 더 나은 방향의 추경 편성과 집행 이뤄져야

추경으로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순 없다. 잠재성장률 이하로의 성장률 하락을 방어하고, 취약계층의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추경의 의미는 크다. 하지만 정부의 자원은 항상 최선의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전체 규모와 내용 등 모든 면에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니 더 나은 방향의 추경 편성과 집행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최석원 전 SK증권 미래사업부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