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트럼프·푸틴과 ‘얄타 2.0’모색?
외신들 “중, 우크라이나 평화유지 역할 기대” … 우크라 해결 뒤 대만문제 불거질 리스크도
우크라이나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새로운 국제질서의 책임자가 결정될 수 있다.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다. 현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 초청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젤렌스키 대통령은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올해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 8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많은 국가들이 종전 기념일을 활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향후 국제질서가 크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고 한다.
닛케이아시아는 20일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빠른 움직임에 대응해 중국은 인민해방군을 외교전략의 일부로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 논설위원 나카자와 카츠지는 미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의 외교적 책략은 2차세계대전 이후 현재의 구조를 대체할 새로운 얄타협정과 세계질서의 공동설계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2차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4~11일 흑해에 접한 크림반도 남부해안의 휴양지인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빅 3’ 지도자 간 역사적인 회담이 열렸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전후 국제질서의 윤곽을 정한 얄타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에는 독일을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가 각각 점령한 4개 구역으로 분할하고 국제연합(UN)을 설립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얄타회담이 열린 장소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여름 휴양지였던 리바디아궁전으로 얄타 시내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였던 크림반도는 2014년부터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후 UN이 설립되고 전쟁 승전국으로서 프랑스 중화민국 미국 영국 소련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됐다.
우크라전쟁 3주년이자 얄타회담 80주년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얄타회담이 열렸던 크림반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 없이 대면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나카자와 논설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트럼프, 푸틴과 함께 ‘새로운 빅 3’ 중 하나로 얄타 2.0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경제력·군사력과 시 주석의 지속적인 권력 장악력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시진핑 주석은 내수경제 부진으로 흔들린 정치적 기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공동설계자가 되기 위한 첫 단계로 중국은 휴전이 이뤄진 뒤 우크라이나를 위한 안보프레임워크에 참여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이 열리면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안보조치를 취해야 하느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이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을 위한 미러 정상회담을 트럼프정부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또 “중국이 휴전 뒤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에 합류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을 파견할 준비가 돼 있음을 트럼프정부에 알렸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트럼프정부가 군대 파병이 포함되는 우크라이나 평화유지 임무를 위해 유럽뿐 아니라 중국·브라질에도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최근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해외 평화유지작전을 위해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중국의 능력을 홍보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나토 사무총장 마크 루테와의 회담에서 “중국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힘”이라며 “UN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평화유지군의 최대 기여국”이라고 말했다.
인민해방군 예비역 대령이자 칭화대 국제안보전략센터 선임연구원인 저우 보는 “중국은 평화 유지에 있어 글로벌사우스 및 나토 이외의 국가들과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중국이 유럽 안보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 우크라 이후 미국 타깃 될 수도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중국군을 주둔시키는 데 동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현재 상황에서는 중국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러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고위 외교관들은 18일(현지시각)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만났다.
미국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지속가능하며 모든 측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분쟁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단 중국은 사우디 회담을 공개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중재 의지를 적극 피력한 중국으로선 떨떠름한 상황 전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이 중국에게 오히려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한 미국이 중국을 주요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가장 큰 관심사는 트럼프정부가 우크라 문제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다. 최근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와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은 미국 군사자산의 대부분을 중국에 대응하는 데 집중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무역대표부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와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 등 중국 매파들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중국 상무부 자문이자 베이징 국제경영경제대 교수인 존 공은 “중국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며 “중국은 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거나 최소한 휴전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국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트럼프를 자극할 수 있는행동을 피하고 있다. 트럼프정부의 10% 관세에도 신중한 움직임으로 대응한다. 트럼프 첫 임기 때 펼쳤던 공격적인 ‘전랑외교’를 자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수년간 지속된 부동산 폭락, 고착화된 디플레이션, 내수부진 등 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가 중국에 강력한 입장을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이달 13일 미 국무부는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웹사이트 자료집에서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는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의 입장은 물론 그동안 미국이 유지해 온 ‘하나의 중국’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미 국무부 자료집은 또 “우리는 양안 간 이견이 강압 없는 평화적 수단을 통해 양안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대만이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을 계속 지지할 것이며 여기에는 회원국 가입이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도 “미일 두 정상은 대만의 의미 있는 국제기구 참여에 대해서도 지지를 표명했다”고 명시돼 있다.
닛케이 나카자와 논설위원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는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나 극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결정이 비밀리에 이뤄졌다”며 “올해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를 직접 논의한 뒤 얄타 2.0이 구체화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그러한 회의가 실현된다면 많은 국가와 지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