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만든 ‘진보정당 자리’ 정의당, 대선후보 내나
이재명 “진보는 새 영역이 맡아야”
권영국 대표 “정의당 필요한 시점”
대선토론회 참여 자격 이미 확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 보수’라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민주당은 원래 중도보수였다’고 합창하면서 진보정당의 빈 자리로 눈길이 옮겨갔다. 이 대표는 ‘정의당’을 호명했지만 정의당은 원내에 없다. 이 대표는 ‘보수의 빈자리’를 공략 포인트로 정하고 있고 ‘진보의 빈자리’를 놓고 정의당이 움직이고 있다. 대선후보를 낼지 아직 결정한 건 아니다. 하지만 ‘존재감’이 다시 확인된 만큼 조기 대선은 ‘재기의 시간’이 될 전망이다.
20일 정의당 출신 모 전 의원은 “무너진 정의당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이재명 대표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의 코스프레를 하지 않게 됨에 따라 정의당이 설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MBC 100분 토론에 나가 “원래 평소 소신이, 민주당의 입장·위치는 중도 보수쯤에 있다는 판단”이라며 “중도 좌파 또는 진보, 이건 새로운 영역이 맡아야 된다고 본다”고 했다. 같은 날 기자들에게 “진보정당은 정의당, 민주노동당 이런 쪽 아닌가”라고 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면서 원내에서 퇴출됐다. 그러고는 ‘책임론’을 이유로 심상정 전 대표, 이정미 전 대표 등이 사실상 손을 뗐고 일부는 민주당으로, 일부는 조국혁신당으로 떠나기도 했다. 계파별로 갈라진 정의당은 ‘생존경쟁’에 나서며 ‘진보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지만 ‘원외’라는 현실은 혹독했다. 재정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대중의 관심은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예상 밖으로 이 대표의 ‘커밍아웃’으로 진보의 빈 자리가 부각됐고 자연스럽게 정의당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졌다.
원내에 진보를 표방하는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소수정당이 있지만 대중적 지지는 매우 미약하다. 지난 11~13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3개 소수정당의 지지율은 모두 ‘0%’이었다. 5%안팎을 오가며 10%를 돌파하기도 했던 정의당의 원외 퇴출 이후 사실상 원내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주도의 선거 꼼수인 ‘비례 위성정당’에 몸을 담았던 소수정당에 대한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게다가 최근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원탁회의’ 구성에도 모두 진입해 독자 후보를 내거나 ‘진보 이슈’를 강하게 제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정의당의 존재 이유 중 하나로 해석된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객관적 조건과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대응을 해야 될 필요성이 대단히 높은 상황으로 대선후보를 낼 것인지에 대해 내부적인 논의는 하고 있다”고 했다.
권 대표가 머뭇거리는 것은 ‘2022년 트라우마’다. 당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0.23%를 얻어 이재명 대표(47.83%)가 윤석열 대통령(48.56%)에게 진 득표차이인 0.73%p를 넘어서면서 민주당 진영으로부터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 받아왔기 때문이다. 내란에 의한 조기 대선 이후 치러지는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할 경우 정의당에겐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대선이 진영대결로 펼쳐져 빅빙승부가 예상되는 점까지 감안한 염려다.
그러면서도 권 대표는 ‘광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내란 세력을 청산하고 난 뒤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성장 중심, 친기업 중심의 중도보수정당이라고 스스로 선언한 만큼 평등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치 세력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복지와 평등 가치를 중심에 놓고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이냐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대변하는 정치가 원내에서 비게 되는 것”이라며 “독자적인 진보적 가치를 위한 정치 지형이 매우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대선후보를 낼 경우 정의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4.14%를 얻어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도전장을 낼 유인이다.
앞의 정의당 출신 전 의원은 “정의당 녹색당 등 사회개혁 진보세력을 모아 새로운 도전에 나설 기회가 왔다”면서 “이재명 대표의 방향이나 민주당 방향과 달리하는 진보진영 국회의원들도 접촉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표 주도의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진보진영 유권자들의 선택과 정의당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