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대통령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
12.3 비상계엄 이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책 하나를 꼽으라면 하버드대 교수들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일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책들이 비상계엄 이후 역주행을 했지만 온갖 언론과 정치인들이 인용하고, 저자 인터뷰까지 여러 차례 나온 책은 아마 이 책이 유일할 거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 많은 언론들이 주목한 잠재적 독재자 감별기준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국민들도 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덧 독재의 길로 들어선 각 나라의 선례를 읽을 때면 소름이 끼친다. 우리나라에선 계엄령 선포와 국회침탈 등 명확하게 선을 넘은 행위가 있었기에 높은 수위의 사회적 비상벨이 울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당한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일도 잦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다. 선거로 선출된 그는 초반에는 민주주의 건설을 부르짖었고 실제 민주주의자같은 행보를 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도 독재자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 독재자의 길을 걸으며 TV방송국 폐쇄, 야당 인사와 판사 및 비우호적 언론인 체포·추방, 대통령 임기 제한 철폐 등을 이어나갔다. 이 와중에도 시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표했고 민주주의 제도의 틀거리는 보존됐다. 다만 내용물이 텅 비어가는 과정을 밟았을 뿐이다. 대통령궁에 불이 나거나, 대통령이 피격당하거나, 탱크가 거리로 진격하거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았다.
독재화 과정의 대부분이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시민들은 혼란을 느끼면서도 자신들은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곤 했다. 실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민주적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1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주라고 했을 때 응답자 중 51%가 8점 이상을 줬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특별히 아둔해서 이런 조사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리라. 그만큼 이슬비에 옷 젖듯 미묘한 방식으로, 합법성을 주장하며 퇴행적인 조치가 이뤄졌기에 인식이 현실을 따라잡는 데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계엄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어느 정도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계엄과 탄핵 이후로 넘어갔다.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길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방향일까, 아니면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적 갈등으로 민주주의 위기 신호가 더욱 선명해질까.
윤석열 대통령을 엄호하다가 어느새 극우세력과 한배를 타버린 여당, 조기대선을 염두에 두고 뜬금없이 중도보수를 선언한 야당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