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공공부문 회계감사가 필요한 이유
작년 10월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위탁 사무에 대해 회계감사 대신 결산서 검사로 완화하는 서울시 조례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즉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위탁 사무에 대해 엄격한 회계감사를 받을지 아니면 간이한 결산서 검사를 받을지에 대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해석했다. 민간위탁이란 정부가 공공서비스에 대한 책임은 계속 보유하면서 외부기관을 선정하여 서비스 제공을 위탁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023년 서울시는 총사업비 9424억원 규모의 345개 사업을 민간에 위탁했다. 매년 1조원에 가까운 서울시 재정이 민간위탁 사업에 지출되고 있다. 경기도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 사업과 관련된 횡령 등 회계부정 사례가 다수 드러났다. 경기도의 A 노인복지관에서는 관장이 민간위탁 보조금 10억원을 횡령했고, 인천시의 B 육아종합지원센터 회계직원은 10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려 외제차 구입에 사용한 것이 적발됐다. 또한 제주지역 C 청소년보호시설의 시설장은 가족을 유령직원으로 등록해 4억원을 횡령한 사실도 밝혀졌다.
민간위탁 사업비 감독 느슨해지면 눈먼 돈 되기 쉬워
민간기업의 경영자는 주주나 채권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경영활동을 수행한다. 경영자가 대주주인 경우 회사 돈을 횡령하거나 낭비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면 정부로부터 공공서비스를 위탁받은 기관의 경영자는 위탁받은 서비스 제공에 자신의 돈이나 자원을 투자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만 사용하기 때문에 정부와 위탁기관 간의 대리인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감독 권한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 수백개의 민간위탁기관을 철저히 관리하기 어렵고 그렇게 할 인센티브도 크지 않다. 민간위탁사업은 시민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기관 간 대리인 문제가 다층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민간기업보다 회계부정의 여지가 더 크다. 감독이 느슨해지면 먼저 가져가는 자가 임자인 ‘눈먼 돈’이 되기 쉽다.
정부가 민간위탁이나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돈은 모두 시민이 납부하는 혈세다. 따라서 세금을 사용하는 공공부문은 민간기업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회계투명성이 요구된다. 정부나 공공기관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용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시민의 대리인이다. 시민들이 납부한 세금을 자신들의 돈보다 소중하게 사용하고 이를 투명하게 보고할 수탁책임이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민간위탁사업 비용에 대해서 증빙확인은 물론 증빙의 진위여부, 거래의 실재성, 비용집행의 적절성 등을 검증하는 엄격한 회계감사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감사전문가인 공인회계사를 채용해 직접 회계감사를 수행할 수도 있지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회계법인에게 회계감사를 위탁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감리하는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다.
지방자치단체장 납세자에 대한 수탁의무 충실히 이행해야
최근 공공부문 회계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회계감사가 강화되고 있다. 2021년에는 지방보조금 사업자에 대한 외부감사를 의무화했고, 2022년에는 공익법인과 사립학교에 대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서울시의회는 민간위탁 사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간소한 결산서 검사로 완화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민간위탁 사업비에 대한 검증 수준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민간위탁 사업에 대해 제대로 된 회계감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들에 대한 수탁책임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이번 기회에 중앙정부 세출에 대한 회계감사 기능도 강화해 공공부문의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기회로 삼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