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자발적 탄소시장’이라는 허상

2025-02-26 13:00:15 게재

#1. 재작년 1월, 영국의 유력 언론인 가디언(Guardian)이 자발적 탄소시장의 온실가스 감축효과의 허구에 대해 폭로했다. 열대우림을 보전할 경우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으로 보아 배출권을 지급하는 REDD+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중인데 막상 분석을 해보니 전체 배출권의 94%가 실제 감축효과가 없는 ‘유령 배출권’이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출고되자마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디즈니 구찌 쉘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REDD+ 배출권을 구매한 다음,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했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왔기 때문이다. 논란과 비판이 거세지자 배출권의 품질을 인증하고 판매를 중개해왔던 사업자인 베라(Verra)의 CEO는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신뢰도도 추락해버렸다.

#2. 쿡스토브(Cookstove) 사업은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저효율 조리도구를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해 주는 프로젝트로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매연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서 소위 ‘지속가능개발’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SK 등 대기업들도 쿡스토브 사업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배출권을 국내에 들여와서 규제이행은 물론 기업 홍보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해외 배출권의 80%가 쿡스토브 사업에서 나온다.

그런데 작년 1월, 세계 3대 과학저널 중 하나인 네이처에 쿡스토브 사업의 감축 효과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쿡스토브 사업의 감축 효과가 10배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즉, 기업들이 보고한 감축량 중에서 실제 감축량은 10% 미만에 불과하고 나머지 90% 이상은 가짜라는 의미이다. 베라는 해당 연구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불량 배출권’ 논란을 피하고자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 중이다.

시장규모 커지지만 ‘그린워싱’ 논란도 커져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은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규제가 없는 영역에서 운영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규제여서 의무적 탄소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으로 불린다. 개별 국가의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항공 부문이나 배출권거래제 같은 법적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기업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이행하는 수단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규모는 계속 성장해 2030년 기준으로 6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배출권 품질에 대한 ‘그린워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 이외에도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발행되는 배출권이 엉터리라는 연구결과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발적 탄소시장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기인한다. 국가가 관리하는 배출권거래제와 달리, 자발적 탄소시장은 민간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배출권의 감축 효과에 대한 검증이 허술할 수밖에 없고 이를 어길 경우 과징금 같은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또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사업장에서 에너지 효율 개선이나 재생에너지 같은 기술을 도입해서 얼마나 줄었는지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감축량이 부풀려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나오는 배출권에 투자했던 기업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인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배출권 가격에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배출권 가격은 40달러이고 최대 탄소시장인 유럽의 배출권 가격은 100달러 수준이지만 자발적 탄소시장의 배출권 가격은 끽해야 최대 10달러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만 특별히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가격 차이를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온실가스 1톤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이 유난히 자발적 탄소시장에서만 저렴할 리는 만무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품의 속성을 가지는 배출권의 가치가 낮아지면 가격도 덩달아 낮아지기 마련이다. 휴지 조각에 불과한 불량 배출권이 대량 생산되고, 자연스레 가격이 내려가니 기업 입장에서는 돈도 아끼고 홍보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불량 배출권 유통 안되도록 단속이 먼저

상황이 이래도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는 오히려 자발적 탄소시장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상의는 2023년부터 탄소감축인증센터를 설립하고 자체적인 탄소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감독하고 규제해야 할 환경부는 거꾸로 산업계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기재부는 한술 더 떠서 최근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 메커니즘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이 1만원에 미치지 못해 사실상 감축기능이 마비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다들 엉뚱한 해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발적 탄소시장이라는 허상을 쫓을 것이 아니라 불량 배출권이 유통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본분이다.

권경락 정책활동가 기후환경단체플랜1.5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