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벤처·스타트업계의 갈림길
필자는 지난 25년간 국내 벤처생태계에 몸을 담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회자되는 미증유의 통계수치를 접하면 당혹감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 오는듯한 위기감이 앞선다.
몇년 전부터 너도나도 “힘들어 죽겠다”는 벤처인들의 하소연들이 이제는 정말로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숫자들이 일찍이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들이어서 걱정이다. 이 수치들은 지난 1년간의 환율 폭등, 최근 국내정치의 혼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차별적 관세폭탄 등이 반영되기 이전의 통계다.
재앙적 산업규제에 벤처업계 먹구름
먼저 기술기반 창업기업의 숫자 자체가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내수경기의 장기침체, 고금리로 인한 창업비용 증가가 이유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인구감소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의 재앙적 산업규제 탓으로 감히 판단한다.
관련 법률부터 지자체 조례까지 거미줄처럼 촘촘한 법·제도적 규제뿐만 아니라 지대추구에 기반한 기득권들은 변화와 혁신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경제주체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는 당연히 허용되고 유니콘이 속속 등장하는 산업영역에서조차 창업 이후 기업의 성장보다는 각종 민·형사 송사에 시달리는 선배 기업인들을 보면서 어떤 청년들이 창업을 꿈꾸겠는가.
전체 벤처기업의 영업이익도 사상 최초로 적자로 돌아섰다. 전체 벤처기업 영업이익 총액은 2022년 말 1조1520억원에서 2023년말 4219억75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무려 1조5740억원이나 급감했다. 벤처기업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적자전환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감소폭은 더욱 충격적이다.
벤처투자시장도 전체규모의 축소, 펀드 결성액의 감소 등 답답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GDP 대비 벤처투자 비율이 이스라엘의 1/7, 미국의 1/5 수준에 불과한 국내 벤처투자시장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2024년도 우리나라 전체 벤처투자액은 약 11조9000억원으로 2021년도 총액 15조9000억원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미국의 AI분야 벤처투자액만 약 70조원에 달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신산업 영역의 추격자 위치도 매우 불안해 보인다.
국내 벤처투자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코스닥시장도 수익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 공적자금 투입 없이 제도개선과 세제개편을 통해 1000조원을 상회한다는 부동산 유동자금과 400조원을 돌파한 퇴직연금을 벤처투자로 유도하자는 업계의 외침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벤처생태계 한계 극복할 혁신적 정책 절실
누적된 우리 벤처생태계의 한계극복을 위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 정책이 절실하다. 심각한 기업현장의 현실을 앞에 두고서도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식의 상황인식은 또다시 오랜 벤처빙하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스타트업이 융성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만 언급하고자 한다. 전체 벤처기업은 2023년 말 현재 약 94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고 매년 약 5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중 30대 이하 청년층의 비중은 52%에 달한다.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패권과 경제안보시대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또 그 속에서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