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던진 이재명의 정책들, 당 안팎 여론악화로 연이은 ‘좌초’
‘52시간 예외’ 이어 ‘자동안정장치 검토’도 논란 속으로
민주당 주도로 추진한 정책 충분한 토론없이 뒤집기도
금투세 상속세도 민주당 기존 입장 크게 벗어나 논란
“내부 토론 문화 경직 … 지도부 일임, 비판 어려워” 지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용 의지를 보인 ‘국민연금 자동안정장치 도입’이 내부 반발에 부딪혀 좌초될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의 52시간 예외 적용 검토’에 이어 두 번째다. 노후 보장과 노동 착취 해소라는 ‘진보진영 이슈’에 대한 우클릭이 당안팎의 반대 목소리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폐기, 가상자산 과세 유예, 상속세 면세기준 상향조정, 근로소득세 감세 등과 함께 내부 토론보다는 이 대표의 결단에 따른 ‘공개적인 문제제기 방식’이 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 내부의 토론문화 부재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비주류인 비이재명계쪽에서는 이를 이재명 일극체제의 맹점으로 공략하며 ‘토론의 부활’을 주문하고 나섰다.

27일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의 의원총회 풍경을 보면 토론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다”며 “쟁점에 대해 충분한 토론을 하기 보다는 원내 지도부가 발표하고 이를 분위기 잡아 통과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수도권의 모 중진의원 역시 “민주당의 의사결정구조가 왜곡돼 있다”며 “좀더 시간을 두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기 보다는 강성 지도부가 던지면 그대로 용인해주는 방식이 굳어지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내 토론 부재현상은 최근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쏘아올린 ‘당내 토론용 정책’들이 연이어 논란을 일으킨 후 좌초되는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좌초위기에 있을 때 국정협의체에서 ‘반보라도 전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이 대표가 ‘국회 동의 전제‘로 국민연금 자동조정제도 수용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제도는 지난해 윤석열정부에서 제안했을 때 민주당이 이미 강력한 반대입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지난해 9월 남인순 박주민(보건복지위원장) 등 민주당 보건복지위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 대해 “연금 삭감을 심화하는 장치”라며 “정부안 중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경제 상황에 따라 수급액을) 더 깎으면 노후 대비에 턱없이 부족한 ‘용돈연금’으로 전락한다”며 “특히 청년 세대로 갈수록 연금 삭감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이수진 의원은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소득대체율 42%에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실제 소득대체율은 35%로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동삭감장치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같은 방식은 여야 합의로 진행한 국민공론화 결과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대표가 던진 ‘반도체 기업에 52시간 예외를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 역시 논쟁을 일으킨 후 후순위로 밀린 사례다.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기업과 여당이 요구한 ‘52시간 예외 확대’를 놓고 이 대표는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자에 한해 합의를 전제’로 도입한다는 취지에 ‘일 리가 있다’고 했지만 노동계뿐만 아니라 당내 환경노동위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없던 일’로 치부될 전망이다.
이 대표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금융소득세 과세 폐기, 상속세 공제범위 확대, 근로소득세 인하 추진도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대표가 공개토론회를 열고는 합의점 도달 없이 금융소득세 과세 폐기를 결정했을 때 적지 않은 의원들이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지켜온 공정과세 원칙이 훼손됐다”고 했다. 하지만 반론은 수용되지 않았고 의원들은 입을 닫았다.
상속세 공제범위 확대는 결정세액 10억~18억원의 집을 가진 ‘중산층’이 상속해줄 때 세금을 내지 않도록 면세해주는 것으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중도보수 지지층’을 겨냥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 목소리가 내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소수정당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은 ‘소비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취지로 반대입장을 냈다. 이날 시민단체와 야4당은 거대양당의 상속세 완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민주당의 상속세 완화 정책이 “명백한 부자감세”라며 “상속세를 내는 중산층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인하 등 부자감세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은 근로소득세 인하 추진은 내부 검토 이전에 발표하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감세 규모가 10조원을 넘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조정 방안을 애초 생각과 달리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으로 선회할 것임을 시사했다. 조국혁신당은 감세조치인 근로소득세 인하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냈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이 대표가 내놓은 정책들과 관련해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당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 비명계에서는 당내 토론문화를 활성화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우리당의 정체성이나 노선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은 민주적인 토론과 숙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닫힌 시스템과 구조”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민주당의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정부의 미래상이기도 하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