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독일과 브라질에서 배우는 극단주의 대처법

2025-02-28 13:00:03 게재

최근 주요 선진국에서 ‘극단주의(extremism)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다양한 고민과 실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는 극단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아지는 반면, 극단주의 정당이 미치는 정치사회적 폐해도 점점 심각해지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늘은 극단주의를 대하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극단주의 - 폭력, 증오, 편협함

먼저 극단주의에 대한 정의부터 살펴보자. 영국정부는 영국 내 극단주의를 이슬람 극단주의와 네오나치 집단으로 보고 새로운 위험이 등장할 때마다 극단주의에 대한 정의 및 정부의 대응 방안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가장 최근 입장에 따르면 극단주의는 ‘폭력, 증오 또는 편협함을 기반으로 하는 이념으로 ①다른 사람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부정·파괴하거나, ②자유주의와 의회민주주의 및 민주적 권리 시스템을 훼손·전복·대체하거나, ③이런 결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위한 허용적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려는 목적’을 갖는다.(‘극단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2024, http://www.gov.uk)

영국정부 입장은 극단주의의 정의에 ①과 ②의 직접행동만이 아니라 극단주의자들에게 ‘허용적인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정의는 최근 여러 나라에서 한편으로 극단주의를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극단주의에 우호적인 주장이나 논리를 설파하기도 하는 정치세력들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독일 ‘극단주의자에 대한 방화벽’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방화벽’을 둘러싼 정치논쟁이 활발하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독일 극우 정당 이름이다. 이 당은 2025년 2월 23일 시행된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지난번 선거보다 10%p나 지지를 더 얻으면서 ‘기민·기사연합당(CDU/CSU)’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얻었다.

2차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참화 이래 독일 주요 정당들 사이에서는 극우와 극좌가 다시는 정부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있었다. 이것이 ‘극단주의에 대한 방화벽’이다. 이 ‘방화벽’ 노선에 따라 지금까지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극우나 극좌 정당들과 선거연합, 정책연합, 정부 구성 연합을 하지 않는 것이 합의된 실천 방침이었고 최근 ‘방화벽’ 노선의 적용 대상은 ‘독일을 위한 대안’(대안당)이었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기민당의 전략 때문에 이 ‘방화벽’ 노선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다. 최근 독일 사회에서는 해외 이민자에 대한 혐오나 적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는데, 1월 말 한 극단주의자가 2살짜리 모로코 소년과 이 소년을 보호하려던 40대 독일 남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이후 독일에서는 이민자 대상 혐오범죄에 대한 비난과 함께 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쏟아지며 갈등이 격화되었다.

대안당은 무차별 혐오범죄가 ‘독일정부의 무분별한 이민정책 때문’이며 ‘이민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反)이민정책이 슬로건인 대안당의 이런 입장은 놀라울 것이 없었지만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기민당이 이민 제한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기민당은 관련 의회 결의안을 제출했고 이 결의안에 대안당과 자유민주당 일부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의회를 통과했다.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는 대안당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기민당이 이민제한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 전략이라는 비판과 함께 ‘방화벽’ 노선을 폐기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격화되었다.

기민당 출신 메르켈 전 독일 총리도 기민당이 ‘방화벽’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독일 연방의회에서 대안당의 지지를 받아 다수안이 만들어지는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비판하며 앞으로도 ‘방화벽’ 노선은 지켜져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2025년 2월 총선 결과 기민·기사연합당은 208석, 대안당 152석, 사회민주당 120석, 녹색당 85석, 좌파당이 64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DW. 2025/02/26). 의회 다수당 연합을 만들어야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독일에서 기민·기사연합당의 의석만으로는 정부 구성을 할 수 없으며 연합정부 구성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기민당은 선거 국면에서 대안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는 독일정치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선거 후에는 여전히 ‘방화벽’ 노선을 지킬 것이라고 천명하며 사회민주당을 제1연정 파트너로 지목했다. 하지만 선거전략으로라도 대안당과 손을 잡는 바람에 대안당에 대한 지지를 높여주었다는 비판은 여전한 상태다.

브라질, 극우세력과 자유당의 결합

“국민에게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체계적으로 퍼뜨리고, 음모를 합법화하는 법을 작성하고, 군 간부들에게 계획에 따르도록 압박하고, 수도에서 폭동을 선동했다”(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경찰 수사 결과 보고서 중)

2022년 11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당선자에게 1.8%p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했으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2023년 1월 브라질 연방의회, 연방대법원, 대통령 관저를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후 폭동 주동자 및 참여자들은 구속과 기소,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편 이 사태에 대한 수사를 하던 브라질 검찰은 2025년 2월 19일 쿠데타 모의, 무장 범죄조직 가담, 민주 법치주의 훼손, 국가자산 훼손, 등록문화재 훼손 혐의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2023년 1월 폭동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보우소나루의 주장을 기각하고 직접 가담, 지휘했으며 쿠데타도 모의했다는 것이 브라질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브라질 언론은 그의 보좌관이었던 마우로 시드의 증언을 보도했는데 2022년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쿠데타 자금 용도의 현금을 받아 보우소나루에게 전달했으며, 보우소나루는 쿠데타를 준비하면서 선거법원장 등에 대한 감시를 명령했다고 한다.

폭동과 계엄 시도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보우소나루 소속 정당 자유당의 내분도 심각하다. 2023년 1월 폭동이 발생했을 때 자유당 대표는 폭동 가담자들이 ‘자유당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거리를 두었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보우소나루의 소속 정당이던 자유당이 2022년 대통령선거 당시 전자투표 시스템 공격을 위한 여론몰이에 자금을 조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MBC뉴스 2024/02/09, 한겨레신문 2025/02/19, 경향신문 2024/02/20).

또 자유당이 다수였던 포르투알레그레 시 시의회는 폭동이 일어난 날을 ‘애국자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제출했고, 시의회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의회 의장은 공포를 거부했지만 시의회는 환부된 법안을 다시 의결하였고, 시는 매년 1월 8일을 기념일로 두게 되었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 패배 이후 지금까지 부정선거 규탄, 룰라 정부 비판 등을 소재로 거리 집회를 주도하며 세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검찰 기소 이후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제 보우소나루는 패배한 전임 대통령이 아니라 브라질 극우 운동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사회나 극단주의자는 있으며 때로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원내정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은 기존의 유력 정당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극단주의 연구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