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력추계위 이제 첫발, 갈 길 멀다
법안소위 통과했지만 의협, 의사대표 과반에도 반대 … 내년 의대정원, 대학 자율 가능성
의료인력추계위원회 설치 법안이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위원 구성에 의료공급자 측이 과반을 차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위원회가 정부 산하기구로 소속되는 것 등에 반대 입장을 냈다. 내년 의대정원은 대학 자율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28일 국회와 정부 등에 따르면 27일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설치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법사위-본회의로 가는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의사협회가 여전히 추계위 형식 등에 반대하고 있어 본회의 통과까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 내용을 보면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추계위 소속을 복지부 장관 산하로 신설하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추계위의 심의 결과를 존중해 의료인력 양성 규모를 심의하게 했다. 추계위와 보정심을 거친 후 복지부 장관이 이를 반영해 교육부 장관과 보건의료인력 양성 규모를 협의하는 방식이다.
추계위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5명 이내로 구성하되 의사협회 같은 보건의료인력 직종별 단체 등 공급자 대표가 추천하는 위원이 과반이 되도록 했다. 나머지 위원은 노동자·소비자·환자단체 등 의료수요자 대표 추천 전문가와 보건의료 관련 학계 연구기관 등 추천 전문가다.
추계위 위원 구성에서 의료공급자 측 다수 추천과 전문성을 보장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사협회는 반대 입장을 냈다. 의사협회는 27일 “법안이 의료계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통과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추계위에 의사 등 직종별 대표가 위원회의 과반을 구성할 것 외에 정부 산하가 아닌 독립적인 기구로 둘 것과 추계위에 심의가 아닌 의결권을 부여할 것 등을 요구해 왔다. 과반을 확보한 의사쪽 논의가 바로 의결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희망하는 셈이다.
박단 의협 부회장은 페이스북에 “결국 목소리를 듣는 척만 할 거라면 이런 추계위 만들어봤자 전공의 의대생 아무도 안 돌아간다”며 “이런 식이면 기준금리 결정도 사회적 합의로 하자. 금융통화위원회에도 노동자 시민 소비자단체로 넣고”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일정상 내년도 추계위 설치 후 추계과정을 통해 4월 내 확정하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학이 정부 허용 범위 내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년도 의대정원에 관련 부칙에 ‘복지부 장관은 추계위와 보정심 심의를 거쳐 2026학년도 의사인력 양성규모를 결정해 교육부 장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교육부 장관은 이를 존중해 입학정원을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만약 추계위와 보정심을 거쳐 정하는 절차가 어려우면 ‘대학의 장은 교육부 장관이 복지부 장관과 협의해 정한 범위에서 대학별 교육 여건 등을 고려해’ 4월 30일까지 내년 모집인원을 정하되 ‘의과대학의 장은 대학의 장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시됐다.
추계를 통한 내년 정원 결정이 어려우면 대학에 일부 자율성을 주되 그 범위는 교육부·복지부 장관이 협의해 정하도록 하고 의대 학장이 의견을 낼 수 있게 한 것이 앞선 수정안과 다르다. 총장이 변경할 수 있는 정원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택우 의협 회장은 27일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포럼에서 “정부안대로 증원하면 10년 후 1만여 명의 의사초과 공급이 발생한다”는 자체 연구결과를 강조했다.
문제는 교육부와 복지부가 협의를 통해 정부 입장이 분명히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혼선을 빚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의대 학장과 만난 자리에서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 정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복지부는 “교육부와 사전 협의한 바 없었다”며 “교육부도 명확히 3058명으로 의사 표현을 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해서 환자단체는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정치권을 향해 “더 이상의 소모적인 갈등과 무책임한 행보는 멈추고 현재 의료현장에서 시급한 환자들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정부와 국회는 환자피해조사기구도 법제화해 중증환자들의 의료공백을 선결하는 데 최우선 노력을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