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인간 유전체 암흑지대 밝히기

2025-03-04 13:00:13 게재

인간 유전체 내 암흑지대를 밝히기 위한 대규모 판지놈(pangenome) 사업이 활발하다. 판지놈이란 수십명 이상으로 구성된 집단 수준의 고품질 유전체 정보를 한데 모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21세기 초 초안이 공개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확장판이다.

규모는 현저히 늘었다. 당시 단 한개의 인간 유전체 지도를 확보하는 데 전세계가 힘을 합쳤다면 이제는 지역별로 수십에서 수백개의 인간 유전체 지도를 대규모로 확보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규모 유전체 연구 사업은 사람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한 유전자 수준의 답을 내놓기 위해 시작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왜 사람의 키가 서로 다른지, 왜 어떤 사람은 당뇨병에 더 잘 걸리는지, 왜 어떤 이는 희귀질환을 타고 나는지 등 사람의 차이를 그들의 유전자 차이 수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체 해독에 사용된 기존 방식은 기술 자체에 내재된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유전체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변이 중 그 크기가 작은 변이를 특정한 지역에서만 정확하게 검출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직소퍼즐의 조각 크기가 작을수록 파란 하늘이나 맑은 호수와 같이 비슷한 그림을 맞추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기존 유전체 해독 기술은 읽어낼 수 있는 DNA 조각의 크기가 작았고, 사람의 유전체에는 정말 비슷한 DNA 반복서열이 수도 없이 많이 분포해있다.

그러니 이러한 반복서열이 밀집된 지역에 대해서는 그 DNA 조각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러한 지역은 기존 기술로 들여다보기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어두컴컴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유전체의 암흑지대라 불리기도 했다.

게놈 프로젝트도 아직 미확인 정보 많아

아쉽게도 수많은 유전자는 이 암흑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기존 기술로 검출되지 않는 복잡하거나 큰 변이는 그러한 유전자 수보다도 훨씬 더 많다. 가장 단적인 예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기념비적인 업적인 인간 유전체 지도다. 이 유전체 지도는 3조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고품질로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DNA가 1억2000만개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지역은 당연히 분석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지도가 비어있으니 그 안에 무슨 유전자와 무슨 변이가 있는지 알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이러한 암흑지대에 대해 명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과 사람의 유전적 차이를 그 크기가 작든 크든 모두 검출할 수 있는 기술 말이다.

판지놈 사업은 가장 고도화된 유전체 해독기술을 종합함으로써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판지놈 연구에서 사람의 유전체 정보는 고작 수백개 길이의 짧은 DNA 조각 수준에서 비교되지 않는다. 이제는 첨단 유전체 해독 기법을 종합해 염색체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DNA 정보를 길게 해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천만개 수준의 긴 DNA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평균 약 1억3000만개 길이에 이르는 온전한 DNA 조각인 염색체 수준까지도 확보 가능하다. 그러니 비교도 쉽고 명확해졌다. 마치 1000만 조각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다가 수십에서 수백 조각짜리 퍼즐을 맞추게 된 것처럼 DNA 조각 숫자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판지놈 작성을 통해 암흑지대를 환하게 비추는 것은 물론 어떠한 크기의 변이라도 정확하게 검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간 판지놈 표준 컨소시엄은 현재 47명의 유전체 지도를 판지놈 초안으로 공개했다. 이 판지놈 초안을 기반으로 거대한 변이로 인한 DNA를 약 9000만개, 반복된 유전자 1000여개를 새롭게 추가한 바 있다.

본 연구진 또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함께 한국인 3인의 유전체 지도를 확보해 수만개의 변이를 확보했다. 이러한 연구는 모두 인류 유전체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일 것이다.

1000여 한국인 유전체 지도 확보 사업 출범

최근 국내에서도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연구기술개발과를 필두로 대규모 한국인 판지놈 사업이 출범됐다. 해당 사업은 한국인 1000명 이상의 유전체 지도를 고품질로 확보함으로써 차세대 유전체 연구 기반이 될 것이다.

이는 향후 희귀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변이를 확보하는 등 수많은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기 위한 치료제 개발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의 유전체 연구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해당 사업에 적극 참여해주시길 바란다.

김 준 충남대 교수 생명시스템과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