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불확실성 시대의 공급망 경쟁력
16세기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때론 광기를 가장하는 것이 매우 현명한 일”이라며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제시했다. 이는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통해 불확실한 환경을 만들고 두려움을 유발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이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한 관세 전쟁도 이러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미국의 가중 평균 실효 관세율은 1933년 19.8%를 기록한 이후 지난 100년간 꾸준히 하락해왔다. 21세기 들어서는 평균 관세율이 2% 이하 수준이었으며 멕시코 캐나다 한국과 같은 자유무역협정(FTA) 상대방에게는 관세를 거의 면제해 주었다. 미국은 관세무역협정(GATT) 및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을 주도해 전세계 모든 나라의 관세 장벽을 낮추는 데 앞장서 왔고, 이는 세계 교역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미치광이 전략'과도 맞닿아
미국은 이러한 자유무역 기조를 뒤집고 우방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더욱이 관세부과 시행 전날 이를 한 달 연기한 데 이어 발효 이틀 만에 또다시 한달을 유예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한 집념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업 공급망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관세부과도 교역단절도 쉽지 않다.
두번에 걸친 관세유예는 미국의 고충을 보여준다. 미국의 자동차 3사(GM, 포드 및 스텔란티스)는 완성차 제작 과정에서 소재·부품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8번까지 넘나든다고 한다.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 산업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기에 미국의 관세 조치에 맞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공급망에서의 경쟁력은 상대 국가의 일방적이고 자의적 통제 조치를 억제하며 국민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무역전쟁과는 비견될 수 없겠지만 우리 기업은 항상 대외 리스크에 노출되어 왔다. 2019년에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있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자동차 부품 공급망 단절이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대외통상 협상과 함께 산업 공급망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핵심기술 개발 성과는 의미 있다. 중국이 전기차의 핵심인 희토류 영구자석 제조기술을 수출 규제했지만 우리는 2023년 제조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배터리 분리막의 핵심 소재인 초고분자 폴리프로필렌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러-우 전쟁의 영향으로 반도체 제조공정의 특수가스 수급이 불안했지만 국내 생산을 넘어 해외 수출까지 기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러 소부장 성과는 불확실한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우리 산업의 역동성을 증명하며, 대외 협상력을 높여줄 전략자산이 될 것이다.
공급망 경쟁력은 국제협상에 우월적 지위 보장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을 선정했다. 이후 대응 국가와 품목을 확대해 현재는 200대 기술에 이르고 있으나 여전히 국내 공급망의 완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세전쟁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상대방 국가에 필수불가결한 소재와 부품, 장비를 수출하며 인위적으로 단절할 수 없는 긴밀한 공급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컴퓨터 등 게임체인저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면 글로벌 공급망을 선점할 수 있다. 국제 관계에서 협상은 역학관계에 좌우된다. 선제적 기술개발을 통한 공급망 경쟁력은 국제협상에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며, 국민경제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