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치권, 곳간 비었는데 ‘감세 경쟁’
상속세·금투세·소득세 감세에 반도체 등 전략산업 세제혜택
수십조원 추경 잠정 합의…증세대책 없어 재정적자 눈덩이
조기대선 가능성으로 정치권이 포퓰리즘 감세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정부도 상속세수를 대폭 줄이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으면서 감세 행렬에 적극 가담했다. 정부와 여당이 제안한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폐기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조치를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했다. 여야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합의했고 자녀상속세 공제한도 확대 폭도 조율 중이다. 그러면서 수십 조원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도 잠정적으로 의견일치를 봤다.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재정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지만 증세대책은 없다. 국가부채규모가 빠르게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데도 재정건전성은 모두 뒤로 미뤄놓은 상태다. 13일 나라살림경제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지난해 국회에서 부결된 공제 10배 증대액을 그대로 둔 채 유산취득세 전환을 추가해 국회에 제출했다”며 “정부의 상속세 개편안은 유산취득세 전환 부분과 인적공제 10배 확대가 동시에 포함된 감세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상속세 개편 방안은 상대적으로 상속가액이 적은 상속인보다 상속가액이 큰 상속인의 부담이 더욱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상위 재산가의 상속세의 부담을 낮추는 법안은 필연적으로 초고자산가에게 혜택이 집중된다”고 했다.
임광현 민주당 의원도 “유산취득세 도입은 상속재산이 50억원을 초과하는 ‘고액 자산가’만 혜택을 보는 부자 감세”라고 비판했다. 임 의원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이 50억원 이하인 경우엔 현행 산출세액과 유산취득세 변경 이후가 동일하지만 상속재산이 100억원을 넘으면 세액 부담이 줄어든다.
감세 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미 여야 합의로 법까지 만들어놨던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폐지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전제로 줄여주기로 한 증권거래세는 약속대로 올해 0.15%까지 낮췄다. 가상자산 과세도 2년 연기했다. 모두 정부와 여당의 요구를 민주당이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감세 공조’다.
민주당은 ‘세금 낼 돈이 없어 집을 팔아야 하는 중산층’을 지원해야 한다며 상속세 공제범위 확대안을 제시했다. 조기대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중도층 확보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진보진영 소수정당과 시민단체들을 “18억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중산층이냐”며 “부자감세’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초고액자산가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제안했다. 트럼프의 관세 태풍에 맞서기 위한 반도체 등 전략산업 세제혜택 방안도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줄어든 세수를 메울 방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야 모두 별도의 증세방안엔 모르쇠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동의하면서 추경규모로 여당은 15조원, 민주당은 35조원을 내놓으면서 재원은 ‘빚(국채 발행)’으로 메울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세수여건은 매우 불안하다. 이미 2년간 100조원 가까운 세수 부족현상이 나타났고 올해도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세수 수입규모를 실질성장률 2.2% 기준으로 예상했으나 한국은행은 1.5%까지 전망치를 낮추고 추가 하락 가능성도 열어놓은 상태다. 트럼프발 통상압력이 현실화되면서 내수와 수출 동반 부실에 따른 세수부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조기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 ‘감세 포퓰리즘’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미 ‘정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언급해놓았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