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추경’ 골든타임 놓치나…정부·KDI ‘경기하방 위험’ 한목소리

2025-03-17 13:00:01 게재

여야정 신속한 추경 공감했지만 내란사태 복잡해지며 후순위로

재정 마중물 시급한데 정부 …뒷짐… … 여야는 ‘정치일정’ 우선

여야정이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에는 공감했지만 정치일정에 밀려 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상반기 추경 집행’은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추경안 편성 관례를 보면 정부 추경안 제출 뒤 국회 처리와 실제 집행까지 적어도 2개월은 걸린다. 4월 중에는 추경안이 합의처리 돼야 ‘상반기 추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추경안을 논의하던 여야정 국정협의회는 향후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여야와 정부의 내란사태 해소 셈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판결 이후 정국은 더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일정에 밀려 하반기에나 추경 논의가 가능할 전망이다.

반면 최근 국책연구기관과 정부는 잇달아 국내 경기의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위축되고, 수출 증가세도 둔화하고 있어서다. 재정을 풀어 위축된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신속한 재정 집행을 강조했던 정부 지출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측 빠진 국정협의회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정협의회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권성동 원내대표, 우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이날 협의회에는 정부측이 참석하지 못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헌재 판결에도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자 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추경 등을 논의해온 국정협의회는 17일 현재 추후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어두워지는 경기전망 = 12.3 내란사태 이후 한국경제 전망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4일 ‘그린북’ 3월호를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수출 증가세 둔화, 경제 심리 위축 등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경기 하방’ 진단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10일 발표한 ‘3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 부진과 수출 여건 악화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내수 부진에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국책연구원의 경고성 경기진단 4일 뒤 정부도 똑같은 분석을 내놓은 셈이다.

이런 진단에는 지난 1월 생산·소비·투자 모두 전월 대비 ‘트리플 감소’를 보였던 통계청의 1월 산업활동동향 지표가 한 몫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전산업생산은 전월보다 -2.7%, 소매판매는 -0.6%, 설비투자는 -14.2%를 각각 기록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자 정부는 올초 내수 경기의 마중물 역할을 위해 재정을 신속하게 풀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진단은 더 암울하다. 한은은 지난달 25일 수정 경제전망을 공개하면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내렸다. 한은의 전망치는 기획재정부의 전망치인 1.8%, 한국개발연구원(KDI)의 1.6% 보다 낮춰 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각각 2.1%, 2.0%로 예상하고 주요 해외 투자은행(IB)들이 1.6% 안팎의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보다 더욱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재정신속집행 다짐했지만 = 올해 상반기 신속집행 목표를 역대 최대인 398조4000억원으로 잡고, 예산 집행률도 중앙 재정의 67%로 설정해 속도감 있는 지출을 다짐했다. 하지만, 연초 집계된 총지출은 정부 방침과 달리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총지출이 52조7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예산 대비 총지출(진도율)로 보면 7.8%로, 2014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 말 기준 중앙재정 집행 실적이 19조5000억원, 집행률 7.7%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지난 5년 여 간 1월 집행률이 8~9%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정부의 신속 집행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1월 총지출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설 연휴가 끼어 영업일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해명했다. 내수 부진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가중될 때는 재정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도 같은 인식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추가 재정 투입 등 특단의 돌파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총지출 집행률이 낮아지면 성장세가 위축될 수 있어 신속한 재정 집행 확대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지출 집행률이 낮다는 건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경기 부양 차원에서 재정 지출을 과감히 확장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경논의 감감무소식 = 한때 추경 논의에 불이 붙기도 했다. 지난달 여·야·정이 모두 참여한 국정협의회에서 추경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보류하면서 또다시 파행이 거듭됐다.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이 났음에도 최 대행은 눈치 보기만 거듭하다 국정협의회 ‘보이콧’ 대상이 됐다. 이후 정부 없는 ‘국정협의회’가 진행됐지만, 추경 논의는 진척이 없다.

추경은 이미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재정승수)를 고려하면 연초일수록 효과가 크다. 추경안이 당장 국회를 통과해도 행정업무를 고려하면 1~2개월 뒤나 돈이 풀릴 수 있다.

향후 정치일정도 3~4월 추경 합의 가능성을 좁히고 있다. 주중으로 예고된 헌재 탄핵 판결 이후 정국은 더 요동칠 수밖에 없어서다. 다수가 예측하는대로 탄핵이 결정된다면 정국은 빠르게 조기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대선이 치러지는 5월 중순까지는 정치협상이 발붙일 틈이 없게 된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에는 추경논의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12.3 비상계엄 상황을 지켜봤던 국민들이 대규모 저항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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