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노인을 위한 주택은 있나
4- 김덕원 시니어스마트하우징협의회장
“노인 연 25만명씩 느는데 입주 대기는 4년”
현 주택임대제로는 시니어주택 턱없이 부족 … 노인 프로그램 운영하는 일반아파트도 좋은 선택
노인 인구가 1년에 25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도시에 살던 그들은 은퇴 후 살만한 주택을 고르는데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 ‘액티브 시니어’라는 건강에 큰 문제없이 활동성이 강한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80세 이상부터는 몸이 불편해져 결국 새로운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도권 민간 노인복지주택(시니어주택)은 입주 대기 기간이 평균 4년으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김덕원(사진) 프롭테크포럼 시니어스마트하우징협의회장은 “현행법상 시니어주택을 공급하는데 제약이 상당히 많다”며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기존 아파트 단지에 노인을 위한 공간과 시설을 강화해 노인들이 거주 가능한 주거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빠른 방법”이라고 17일 제안했다.

국내 시니어주택은 전용 커뮤니티 시설과 헬스케어, 그리고 식사제공으로 다른 주택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일부 지역(인구소멸지역)을 제외하고는 분양이 금지돼 있어 사업자가 선뜻 공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금도 신규 아파트 단지는 식사제공과 노인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며 “여기에 기본 의료시설과 장비만 구비하면 전문 시니어주택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일반 아파트단지를 활용하면 노인 주거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20여년 전부터 헬스케어 전문 기업에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왔고 현재 주거시설 커뮤니티 등을 운영하는 SL플랫폼에서 상무를 맡고 있다. 김 회장으로부터 최근 관심이 높아진 시니어주택의 개발과 공급, 운영실태와 미래 전망 등에 대해 질문했다.
●국내 노인복지주택(시니어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인과 이를 해소할 방안이 있나.
시니어주택 관련 강연을 자주 다닌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강좌를 듣는 사람이 대폭 줄었다. 국내에서 시니어주택 사업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현행법상 시니어주택을 분양할 수 없고 임대만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익이 나기 어렵고 수익을 실현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양만 가능해진다고 해서 시니어주택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시니어주택은 운영 전문회사가 거의 없는데다 오래될수록 운영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니어주택 운영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나.
입주민이 500명이면 그에 맞는 식당을 운영해야 하는데 비용 절감 때문에 300명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불만이 쌓이고 식사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된다. 세대당 월 사용료가 300만원이라고 하면 실제 운영비가 250만원 들어간다. 운영회사들이 이 비용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커뮤니티 운영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간호사도 줄인다. 결국 부실한 운영으로 사실상 일반 아파트단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운영되는 곳이 있다.
●올바른 시니어주택 공급과 운영 방식을 제안한다면
분양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우선 공급이 늘어나야 하는데 현행 임대제도로는 공급에 나서는 시행사나 개발사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분양만이 해법은 아니다. 건강 관리 기구 몇 개 가져다 놓고 식사 서비스하고, 노인 커뮤니티 만들었다고 제대로 된 시니어주택이라고 할 수 없다. 분양을 하면 입주자대표회의가 생기고 입김이 세지면서 운영권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노인전문 커뮤니티나 의료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수영장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시니어주택을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세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 제공이다. 노인은 식사 공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75세 이후에 매일 끼니를 만들어 먹기 어렵다. 때문에 안정적인 식사 공급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커뮤니티다. 주변 지인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70대까지는 별도의 커뮤니티 시설에 대한 욕구가 없다. 하지만 70대 후반부터는 커뮤니티가 꼭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선택해서 할 수 있고 건강을 위한 활동에 목이 말라지는 시기다. 여기까지는 요즘 일반 아파트단지에서도 다 가능하다. 경기 수원의 한 민간임대 아파트 단지에서는 노인을 위한 강좌와 운동 프로그램이 잘 구성돼 있다.
마지막으로 의료 서비스다. 아직 일반 주거단지에는 적용되지 않은 시설로 시니어주택에 꼭 필요한 요소다. 의사진료가 아니라도 요즘 의료기기가 잘 나와있다. 스스로 체크한 건강상태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수시로 점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내에 모범적인 시니어주택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통상 시니어주택은 도심형과 전원형, 리조트형이 있다. 도심형은 다 비슷한 형태다. 아직 우리는 전원형이라고 칭할 정도의 시니어주택은 없다. 미국 등 북미권에서는 리조트형이 많다. 전북 고창에 가면 45만평 규모의 은퇴자마을이라는 시니어타운이 있다. 539세대로 구성된 대단지다. 단지 안에 내과 안과 이비인후과까지 있다. 주변은 골프장으로 둘러져 있다. 맨발걷기 등 실외활동과 실내 커뮤니티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듣기로는 입주자 10% 정도가 미국 등 외국에 살다가 국내 거주를 희망한 재외동포라고 한다. 이같은 시설이 늘어난다면 노인세대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해외에서 참고할 만한 시니어주택 운영시스템이 있다면
일본은 시니어주택 단지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동 구매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국내에서는 운영상 비용 문제로 시설과 프로그램을 줄이고 있는데 일본은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이를 해결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시니어주택 내에 설비 고장 문제가 있다면 공동으로 설비를 보수하는 업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주택법 상 설비 등을 보수할 수 있는 인력을 고용하게 돼 있어서 어렵다. 일본 사례를 참고해 우리도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주택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설계나 구조보다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운영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 좋아 보이는 주택이라도 커뮤니티 운영 등이 부실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시니어주택 운영은 단기간 이익이 없어 이것저것 다 줄여놓고 일반 아파트 단지처럼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의료 서비스도 현재 상황보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중요하다. 노인 주거공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대에 맞는 시설 운영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시니어주택 전문 운영사가 부족해 지속가능한 노인 전문 주거단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