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자본시장 통합 재추진

2025-03-20 13:00:02 게재

수조유로 저축, 투자 전환 시도

통합 제안서 올해 4분기로 앞당겨

유럽연합(EU)이 지지부진했던 자본시장 통합작업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안보 홀로서기’에 필요한 자본조달을 위해 은행에 잠자는 수조유로 저축을 투자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위원회는 19일(현지시각) 보고서를 내고 “당초 내년에 제시하려 했던 자본시장 통합 제안서를 올해 4분기로 앞당겨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FT에 따르면 제안서에 담길 주요 내용은 △개인의 저축을 유럽자산에 투자할 경우 각종 세제혜택을 주고 △은행과 보험사에 대한 자본확충 요건을 재검토하며 △각 국가별로 분절화된 규제를 유럽 공통의 규정으로 전환하는 것 등이다.

자본시장 통합의 핵심부분은 강제권이 없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처럼 전환해 직접감독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처럼 금융산업이 상대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자체적인 감독을 선호하고 있다.

위원회가 제시할 또 다른 제안 내용은 증권상품화를 쉽도록 하는 일이다. 은행대출을 거래가능한 증권으로 바꿔 시장에서 사고팔아야 유동성을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은행과 보험사에 대한 건전성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EU 금융서비스 위원 마리아 루이즈 알부커키는 FT에 “핵심은 유럽 자원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럽은 국가간 투자장벽이 높고 유럽인들은 투자보다 저축을 선호한다. EU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1조6000억유로가 은행계좌 또는 금고에 잠자고 있다. 이는 유럽 민간 총자산의 약 1/3 규모다.

그동안 분절된 유럽 자본시장을 통합하려는 노력은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가 중앙화된 감독기구, 파산관련 법 통합, 공동의 저축보험 등에 대해 반대하면서 지연돼왔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고 나서면서 국방 등의 부문에 대한 막대한 자본조달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EU위원회 보고서는 “EU의 금융경쟁력과 안보는 혁신적 스타트업들을 키우는 능력, 대규모 자본에 대한 접근 여부에 달렸다”며 국방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바이오테크, 청정기술 등을 우선순위 과제로 꼽았다.

알부커키 위원은 “EU 금융시스템은 과도한 위험 떠안기(리스크 테이킹)를 막는 목적에서 설계됐지만 이제는 리스크 테이킹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유럽 금융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EU 밖에 있는 경쟁자들과 싸우려면 보다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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