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부당거래 무더기 적발…빗썸·농협조합·저축은행도
전·현직 임직원, 배우자·친인척, 사모임 등 이용 부당대출
은행 고위 임원, 점포 입점 청탁받고 직원 반대에도 관철
금감원 검사에서 ‘이해관계자 이해상충 부당거래’ 드러나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기업은행·빗썸·농협조합·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캐피탈)의 부당거래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금융회사에서는 전·현직 임직원들이 연루된 대규모 부당대출이 벌어졌으며,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에서는 전·현직 임원에게 고가의 사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임원이 사택 임차를 가장해 개인 분양주택 잔금을 납부한 사례도 드러났다.
25일 금감원은 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와 빗썸에 대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부당거래’ 검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금융회사 등에 대한 검사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 및 그 배우자·친인척, 입행동기 및 사모임, 법무사 사무소 등 업무상 거래처와 연계된 다수의 이해상충 및 부당거래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 금융사고 보고 않고 은폐·축소 시도” = 기업은행은 882억원(58건) 규모의 부당대출이 드러났다. 퇴직 직원 G씨가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7년간 받은 부당대출 규모는 785억원(51건)에 달했다. G씨의 배우자는 기업은행 심사센터에서 심사역으로 근무하면서 부당대출을 도왔다. 친분이 있는 은행 지점장도 G씨가 허위 증빙 등을 이용한 쪼개기 대출을 통해 자기 자금 없이 대출금으로 토지를 구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2018년 9월부터 11월 기간 중 64억원의 부당대출을 취급·승인했다.
G씨 배우자는 G씨가 사업성 검토서상 자금조달계획 등을 허위로 작성해 2020년 9월 지식산업센터 공사비 조달 목적으로 신청한 여신 59억원을 승인했고, 지점장과 다른 심사역도 이 같은 사실을 묵인한 채 대출을 취급·승인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G씨는 미분양 상가의 부당대출을 알선하기도 했다. 모 건설사의 청탁을 받아 건설사에 대한 대출을 입행동기들인 심사센터장과 지점장 3명에게 알선해 건설사로부터 1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사센터장과 지점장들은 허위 매매계약서를 통해 매매가를 부풀린 미분양 상가 구입자금대출 등 총 216억원의 부당대출을 취급·승인했다.
G씨는 기업은행 점포를 본인 소유 지식산업센터 입점시키기 위해 로비도 벌였다. 은행 고위 임원(부행장급)에게 점포 입점을 청탁했고, 임원은 실무직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점포 담당부서에 4차례 재검토와 점포 입점을 결정하는 위원회에 안건 상정을 지시했다. 결국 위원회 승인을 거쳐 점포 입점이 결정됐다. 해당 임원은 G씨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국내외 골프접대를 받아왔고, 자녀를 G씨 소유 업체에 취업한 것처럼 가장해 약 2년에 걸쳐 급여 명목으로 6700만원을 지급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G씨 사건 이외에도 기업은행 내부에서는 영업점의 대출을 점검·심사해야 할 심사센터장이 차주와 공모해 5건(27억원)의 부당대출을 승인했으며, 직원과 퇴직 직원의 사적 투자관계 등이 적발됐다.
이해상충 등 관련 부당거래를 적발하고 조치할 책임이 있는 기업은행 부서는 G씨 관련 비위행위 제보를 받고 자체 조사를 통해 다수 지점 및 임직원이 연루된 부당대출과 금품수수 등 금융사고를 인지했다. 하지만 금감원에 보고업무를 맡은 부서에 이를 전달하지 않아 금감원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의 금감원 보고부서는 ‘모 지점 여신 관련 검사방안 등 검토결과’라는 별도 문건을 마련해 사고 은폐·축소를 시도했다”며 “해당 문건 내용을 실제 실행했고 지난해 12월말쯤 금감원에 금융사고를 허위·축소·지연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금감원 검사 기간 중에 부서장 지시 등으로 해당 부서 직원 6명이 271개 파일과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검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조합 부당대출 1083억원, 저축은행 부당 PF대출 = 지역의 한 농협조합에서는 1083억원(392건)의 부당대출이 드러났다. 10년 이상 조합 등기업무를 담당한 법무사 사무장이 오랜 기간 형성한 조합 임직원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대출 중개·등기·서류제출 등에 관여하면서 서류를 변조하는 수법으로 2020년 1월부터 2025년 1월까지 5년간 부당대출을 벌인 것이다. 준공 전 30세대 미만 분양계약은 실거래가 신고 의무가 없는 점을 악용해 매매계약서 등을 변조했다.
금감원은 “조합은 매매계약서, 등기부등본상 이상 징후가 다수 존재했는데도 대출심사시 계약서 원본·계약금 영수증·실거래가 등 확인을 소홀히 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에서도 거래처와의 관계에 따른 부당대출이 발생했다. 모 저축은행의 부장 N씨는 PF 대출 차주사(시행사)를 위해 자금조달 알선을 의뢰하고 PF대출 실행을 대가로 차주로부터 214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N씨는 시행사가 PF 대출 취급조건(자기자본 20%)을 충족하지 못하자, 그간 PF대출 업무를 담당하며 알게 된 PF 등기업무 담당 법무사의 사무장에게 시행사가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한 것처럼 보이게 할 목적으로 자금조달 알선을 의뢰했다. N씨는 시행사가 사무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2억원을 시행사의 자기자본에 포함시켜 심사했고 해당 시행사에 대해 부당 PF 대출 26억5000만원을 실행시켰다.
한 캐피탈사의 투자부서 실장 P씨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상 한도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친인척 명의로 3개 법인을 설립하고, 이들 법인에 대한 대출 심사요청서를 작성하는 등 심사에 관여하는 방법으로 121억원(25건)의 부당대출이 실행되도록 했다.
◆빗썸, 전·현직 임원에 부적정한 사택 임차계약 = 빗썸의 경우 전·현직 임원 4명에게 임차보증금이 116억원인 고가의 사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부당거래가 발생했다.
빗썸은 전직 임원 L씨가 개인적으로 분양받은 주택을 빗썸이 사택으로 임차하는 것처럼 가장해 보증금 11억원을 지급했다. L씨는 보증금을 개인 분양주택의 잔금 납부에 사용했으며, 이후 해당 주택을 빗썸의 사택으로 제공하지 않은 채 제3자에게 임대해 보증금 28억원을 수취한 것으로 금감원 검사에서 드러났다.
빗썸의 현직 임원 K씨는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본인 사용 목적의 임차보증금 30억원의 사택 제공을 스스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빗썸은 임직원에 대한 임차사택제공 등 관련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적절한 내부통제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드러난 부당대출 등 위법사항에 대해 엄정 제재할 방침이다. 관련 임직원 등의 범죄혐의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하고, 위법사항 및 관련자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또 이해상충 방지 등과 관련한 내부통제 실태 점검을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금융회사의 자체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이해상충 방지 등 관련 업계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도 추진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금융회사 등의 이해상충 방지 등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