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대한민국, 이대로 주저앉을 셈인가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면서 앞에서는 미국이 가로막고 뒤에서는 중국이 거칠게 밀어제치며 대한민국이 추락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각종 지표가 한국판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을 알리면서 피크 코리아를 예고한다.
통합적 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내란사태를 계기로 진영대결이 급기야 내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너도나도 내전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며 내면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락없이 망국의 길을 걷고 있다. 담대한 시각으로 사태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야 할 때다.
이럴 때는 역사 공부가 제격이다. 작은 나라가 강국으로 부상했던 세계사의 명장면들을 복기해 보자. 페르시아는 고대 중동지역을 지배한 강력한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아테네 등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 상대로 연거푸 패전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절대 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리스 도시국가 군대가 오로지 제국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던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한 것이다. 결국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에게 제국 전체가 점령당해 사라지는 비운을 겪고 말았다.
‘잃어버린 30년’ 시작되는 피크 코리아 예고
칭기즈칸이 이끈 몽골은 사상 초유의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몽골 인구수는 250만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은 군대 내 신분 질서를 철폐하고 전리품을 최대한 고르게 분배함으로써 군사들의 의욕과 투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몽골 군대는 기마민족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동성을 과시했다. 하루 사이에 무려 400km를 이동할 정도였다. 몽골 군대의 경이로운 기동성 앞에서 상대 군대의 전술은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몽골 군대는 점령 과정에서의 잔인함으로 악명이 높았어도 상당한 관용과 포용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몽골은 점령 지역 종교의 자유와 상업 거래 등을 최대한 용인했다. 몽골군은 점령지 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대신 정보원으로 적극 활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피점령 종족과 수평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지배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단순 면적을 기준으로 보면 인류 역사상 최대 판도를 자랑한 나라는 대영제국이었다. 인도 캐나다 호주만으로도 엄청난 면적을 자랑했다. 제국을 일군 영국은 인구수로 보면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작은 나라였다. 잉글랜드만 놓고 보면 면적과 인구수에서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사례는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성공이었다. 영국이 산업혁명에 가장 먼저 성공하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하나 있었다. 산업혁명 당시 런던 노동자의 임금은 암스테르담의 두 배에 이르렀고 베이징과 비교하면 여섯 배 차이가 났다. 가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임금이 높은 조건에서 영국의 자본가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은 기술 혁신뿐이었다. 자본가들은 노동집약적인 면직물 산업을 중심으로 앞다투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기술혁신에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덕분에 이러한 흐름은 매우 빠르게 확산했다. 귀족에서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기술혁신에 뛰어들었다. 토지에서 부를 얻던 귀족들은 집 안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기술개발에 몰두하기도 했다. 영국은 혁신 에너지를 경쟁적인 기술혁신 형태로 폭발시킴으로써 산업혁명에 가장 먼저 성공할 수 있었다.
극단적 대결 멈추고 통합적 기운 형성해야
블룸버그의 평가대로 한국은 잠재적 혁신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문제는 극단적 진영대결이 그 발현을 억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진영대결은 상대를 종북좌파, 친일독재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뿌리 깊은 역사적 산물이다. 작금의 진영대결이 한바탕의 살풀이로 그치기를 희망한다. 극단적 대결이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통째로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확산시키면서 통합적 기운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