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관치금융, 금융인 스스로가 극복해야

2025-03-26 13:00:01 게재

‘3월 정기주총 시즌’이다. 800개가 넘는 상장사들이 정기주주총회를 일제히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4대 지주의 위험가중자산(RWA)이 폭증하고 보통주자본(CET1)비율이 낮아지면서 주주환원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말 기준 4대 지주의 위험가중자산은 전 분기 말 대비 35조원이 증가했다. 하나지주는 13조5000억원, KB지주와 우리지주는 약 7조5000억원, 신한지주에서는 6조5000억원이 각각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12·3 내란사태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말 달러당 1307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2월 말 1472원으로 165원 치솟았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발전상에 ‘격세지감’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국내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외화대출 가중치에 영향을 준다. 외화대출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오를수록 위험도가 커지는 구조다. 원화약세는 파생상품 관련 위험가중치에도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RWA가 증가할수록 금융지주사의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인 CET1비율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CET1비율(CET1/RWA)은 자본측면에서 얼마만큼 위험흡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여기서 보통주자본이란 보통주와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포괄손익누계액 등을 합한 금액이다. 위험가중자산은 위험정도를 감안해 은행자산을 유형별로 다시 계산한 것인데 원화값 하락에 따라 외화표시대출이 늘어나면 위험가중자산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CET1비율은 인수합병(M&A), 주주환원 등을 진행할 때 중요한 기준점으로 활용된다. 금융당국은 CET1비율이 12%를 넘도록 권고하고 있다. 각 금융지주사는 CET1비율 13%를 초과한 자본을 자사주소각이나 주주배당에 동원할 수 있다.

4분기 금융지주 실적발표의 핵심은 환율상승에 따른 CET1비율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었다. 지주사별로 살펴보면 KB지주의 CET1비율은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13.51%로 직전 분기보다 0.34%p 하락했다. 13.51%에 준하는 배당재원은 1조8700억원으로 2024년 총환원금 2조200억원보다 감소했다. 신한지주와 하나지주의 CET1비율은 13.03%, 13.13%로 각각 0.10%p, 0.04%p 떨어졌다. 반면 우리지주의 CET1비율은 12.13%로 0.17%p 상승하며 4대 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CET1비율이 개선됐다.

상대적 가치평가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은 우리지주를 제외하고 모두 1년 전보다 떨어졌다. 3월 21일 기준 KB지주의 PBR은 0.53배, PER은 5.83배다. 같은 날 신한지주는 0.43배와 4.85배, 하나지주는 0.42배와 4.57배, 우리지주는 0.37배와 3.99배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최대 금융지주회사인 DBS홀딩스(PBR 1.90배, PER 11.54배)와 비교하면 25~50% 수준에 불과하다.

DBS(Development Bank of Singapore)는 196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추진 당시 주요역할을 담당했던 한국산업은행을 모델로 삼아 설립됐다. 현재 DBS는 동남아시아 최대 은행이자 세계 최고의 디지털 은행으로 성장했다. 산업은행이 아직도 망해가는 재벌기업의 뒷설거지까지 하는 것을 볼 때면 DBS의 발전상에 ‘격세지감’이 든다.

금융사고 최대한 줄이고, 권력의 인사압력 버텨야

한국 금융업이 낙후된 원인은 ‘관치금융’에 있다. 검사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임하면서 관치금융은 극에 달했다. 이 원장이 손태승 임종룡 전·현직 우리금융회장의 임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주주들을 무시하는 관치의 전형이다. 특히 이 원장은 확정도 안 된 혐의를 발표하는 검찰의 ‘망신주기’ 수법을 그대로 써왔다. 2023년 불거진 라임펀드 특혜 환매 의혹 발표가 대표적이다. 당시 피해를 입은 김상희 민주당 전 의원은 이 원장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이 원장의 부적절한 처사는 향후 더 큰 ‘직권남용’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4대 지주 회장 인사에 대통령 부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금융계에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의 뒷배가 없었다면 이 원장의 관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치는 독재정권 시절에나 가능하다. 한국 금융이 관치를 극복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사내 금융사고를 최대한 줄이고, 지주 회장이 권력의 인사압력을 임기까지 버텨야 한다. ‘권력’의 시대가 가고 ‘기술·서비스’ 시대가 왔다. 관치금융은 금융인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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