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터널’로 변한 중앙고속도로
의성·안동 산불 현장르포
연기에 20m 앞도 안보여
25일 오후 4시쯤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경북 의성군 지역에 진입하자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반대 차선 방향인 안계면과 비안면 산에서 희뿌연 연기가 갑자기 치솟았다. 의성산불 초기 지역으로 이미 산불이 진화됐는데 다시 번지는 상황이었다. 한국도로공사 차량이 산불저지에 나섰고 고속도로 밖에는 소방 차량이 보였다. 고속도로 오른쪽 안평면 무수곡지 인근에서도 크고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한 바람에 불씨가 되살아난 듯했다.

졸음쉼터가 있는 지점에 이르자 의성군에서 발송한 긴급대피명령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17분 단촌면을 시작으로 안계면 비안면 사곡면 신평면 점곡면 안사면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안내하는 문자알림이 잇달아 울리면서 사뭇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고속도로 반대편 매봉산 등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솟아 올랐다. 검은 연기 속에 비치는 해는 더 빨갛게 달아오른 듯 보였다. 일직터널 입구 갓길에서 비상등을 켜고 사진을 찍기 위해 차량 밖으로 발을 딛는 순간 매캐한 연기가 덥쳐 왔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더해져 불안감과 공포감이 커졌다. ‘고속도로를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직터널을 통과한 순간 걱정은 공포로 변했다. 도로 양쪽이 온통 불바다였고 검은 연기로 가득했다. 평소보다 느리게 시속 60~70㎞로 주행하던 차량들이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더 늦췄다. 차량이 움직이는 것보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고속도로 양쪽에서 산불이 넘나들면서 ‘불길 터널’이 형성됐다. 하지만 그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중앙고속도로와 서산영덕고속도로 분기점이 만나는 구간에서는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당초 서산영덕고속도로를 이용해 청송 방향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이미 전면 통제상태였다. 계획한 일정은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오직 ‘탈출’뿐이었다.
검은 연기가 도로를 덮쳐 시야가 20m도 확보되지 않았다. 차량 유리창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화마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성을 찾으려 했지만 도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앞서 가던 차가 아예 멈춰 서기도 했다. 앞쪽을 보니 화마가 도로변까지 번져 회오리바람을 타고 도로와 차량을 집어삼키려 했다. 남안동 나들목에 이르러서야 차량이 정상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5분 가량이면 될 길에서 30여분을 보냈다. 나들목을 지나자 반대편으로 길게 줄지어선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북도 재난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차량을 무조건 도로 위에 대기시킬 게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빼내야 한다고 했다. 서안동 나들목에 다다르자 대기 중이던 차량들이 뒤쪽부터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불길 터널을 빠져나온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이번에는 안동시에서 대피명령 문자가 발송됐다. 4시 53분 안동시에서 남후면 주민들에게 보낸 문자였다. 재난문자는 밤이 되자 안동시민 전체 대피로 바뀌었다. 화마는 이미 안동지역을 삼키고 청송군과 영덕군 영양군 등으로 향했다. 포항시도 위험권에 들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