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900억달러 흑자가 반갑지 않은 이유
증권가에서 종종 언급되는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990억달러에 달했다. 2015년 이후 최고치다. 한국은행은 올해도 900억달러의 흑자를 전망한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는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정말 좋은 뉴스일까? 2014년 봄, 한국은행에서 외환시장팀을 맡고 있을 때였다. 환율이 연일 빠르게 떨어졌다.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시장에 달러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흑자규모가 2012년 이후 갑자기 큰 폭으로 확대됐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경제에 경상수지 흑자는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었다. 안정적인 흑자기조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A’급으로 오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외투자자들이 한국을 안정된 투자처로 인정하는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외환당국은 발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경상흑자의 이면에는 투자부진 문제가 있다
그 해 가을, 또 하나의 좋은 뉴스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이 2014년 9월말로 플러스(+)를 기록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이 대외금융부채보다 커졌다는 것이다. 1994년 통계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수치는 꾸준히 증가해 2024년말 1조달러를 넘어섰다. 사실 경상흑자와 순대외금융자산 증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 나라의 저축은 투자와 같아야 하지만 개방경제에서 국내저축이 국내투자보다 크면 해외로 투자되게 된다. 경상흑자는 국내저축이 국내투자보다 많은 경제흐름과 겹치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국내저축이 급증한 것은 인구구조와 관련된다. 우리나라의 1~2차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는 대략 170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3에 달한다. 2010년은 이들의 나이가 36~55세가 되는 해였다. 이 거대한 인구집단의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국내저축이 크게 증가했다. 1999년 4월 국민연금 가입대상 확대 이후 연금규모가 급성장해 이제 1000조원 이상으로 커졌다. 이는 순대외금융자산이 1조달러를 넘어서는 주요 배경이 된다.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와 소위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증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경상흑자의 배경에 인구 고령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먼저 순대외금융자산 변동의 또 다른 측면인 외국인의 국내투자 추이를 살펴보자. 2010년에서 2024년 사이 내국인의 해외 직접 및 증권투자는 거의 1조5000억달러가 증가했는데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5000억달러가 채 안된다. 더욱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2021년을 고점으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투자가 크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상흑자의 이면에 저축 확대뿐만 아니라 투자부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금리역전, 환율상승은 시장이 보내는 경고
저축이 많고 투자가 적으면 금리가 하락한다. 금융시장 지표를 보면 이런 현상이 확연하다. 한국의 국채수익률은 2010년 2월에 5.3%에서 금년 2월에는 2.8%로 하락했다. 같은 시기에 미국은 3.8%와 4.2%이다. 한미간 금리역전이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환율을 보자. 10년 전 1200원만 되어도 높다고 하던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2기와 최근 정치혼란의 부정적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높은 수준이다.
10여년 전에 경상흑자 급증이 울리던 알람을 듣지 못했던 것 아닐까. 여기 저기서 중국 상품들의 싼 가격과 앞선 기술력에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상실과 수익성 저하 소식을 듣는다. 이 문제들이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문제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 수면 위로 본격 올라오고 있는 것 아닐까. 9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가 전혀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