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벼 재배면적 축소, 쌀값대란 부를 수도

2025-03-27 13:00:03 게재

쌀이 남아돌아 1971년부터 50년 넘게 감산정책을 펴온 일본에서 쌀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지난 1년간 쌀값이 2배로 치솟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쌀값대란이 발생했다. 또한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도 쌀값 폭등으로 국가 비상사태에 빠졌다. 필리핀정부는 지난해 쌀값 상승률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쌀값 상승이 지속되자 지난달 식량안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일본 쌀값은 3월 첫째주 5㎏ 쌀 한 봉지가 평균 4077엔(약 3만9800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99%나 폭등했다. 한국의 2.5배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지난 2월 14일 비축미 100만t 중 21만t을 사상 최초로 시중에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도 슈퍼마켓에서 여전히 쌀을 찾아볼 수 없는 등 쌀값 폭등이 진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간혹 매대에 쌀이 있더라도 ‘1가족 1봉지로 구매를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쌀 한봉지 가격 99% 폭등한 일본 쌀값대란, 필리핀은 식량안보 비상사태 선포

필리핀은 1년에 4모작이 가능할 정도로 기후조건이 쌀 생산에 적합하다. 그래서 한때는 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안정세를 보이자 국제 비교우위론에 따라 쌀 농사를 포기하고 쌀 수입국이 됐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23년 국제 쌀값이 치솟고 인도 등 쌀 수출국들이 수출규제에 나서자 지난해부터 극심한 쌀값 상승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필리핀은 지난해 쌀 470만t을 수입, 역대 최고 수입량을 기록했지만 급기야 올해 2월에는 정부가 쌀값 폭등을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지금처럼 정부가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수급조절 방안에만 집중할 경우, 이상기후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쌀값 폭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 가족농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의 오카자키 슈시 국제부장은 지난 8일 한국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일본정부가 지난 반세기 동안 벼 재배면적 감축 등 수요에 맞춰 쌀 생산량을 줄이도록 강요하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쌀 부족과 급격한 가격 변동을 초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3년 무더위로 공급이 40만t 부족해지면서 일본의 민간 쌀 재고량이 2024년 6월 말 기준 156만t으로 전년 대비 41만t이 감소,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면서 생산량 감소가 전체 소비량의 6% 미만인데도 쌀 부족과 가격 급등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한국 정부가 줄이기로 한 벼 재배면적 8만ha는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일본에서 발생한 쌀 대란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농촌경제연구원은 국내 상황이 일본과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일본의 쌀값 급등은 일시적인 수요 급증이 주된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쌀 수급 상황과 다르다”고 전제하고 “우리나라는 쌀 소비가 가파르게 감소, 매년 초과 생산량이 20만t 이상 발생하는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이며 벼 재배면적 감축은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농촌경제연구원도 “일본의 쌀값 폭등은 수요 증가와 유통 정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중심으로 유통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유통 흐름과 재고량 파악이 비교적 용이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추진 중인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 사업 때문에 작황 부진 시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 “쌀값 상승 가능성에 대비, 적시에 적정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본과 필리핀의 상황이 결코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쌀이 주식으로 식량 안보와 직결되어있는 데다 현재의 쌀 감산 정책이 일본의 정책과 대동소이하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따라 쌀의 관세화 유예 대가로 매년 40만8700t의 쌀을 의무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곡물에 식량 안보 의존한 우리나라 쌀 대란 불가피할 수도

한국의 농정당국은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감산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쌀 의무수입량 때문에 국내 생산량을 줄이면 결국은 수입 곡물에 식량 안보를 의존하게 된다.

쌀 생산과 식량 안보 정책 사이에 상충되는 난제가 간단치 않다. 게다가 일본처럼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이라는 통계 자체에 흠결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경우, 쌀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