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대화 부재의 정치, 공감 부재의 정치
역대 최악의 산불이다. 70여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유례없는 재난에 전 국민이 놀람과 슬픔에 잠겼다. 거대양당 지도부는 앞 다퉈 영남 지역의 불에 탄 현장을 다녔다. 이재민과 방화 요원들의 손을 잡고 ‘빠른 복구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로 올라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험한 말들만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 2심 판결 전 유죄를 확신하듯 ‘승복’을 주문했지만, 판결 후 곧바로 불복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탄핵심판을 빨리 하라는 게 정쟁이냐”며 여당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여의도의 160여배에 달하는 산과 살림을 태워버린 참혹한 재난에 대해서도 ‘예비비 말다툼’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2.3 내란사태를 놓고도 온도차가 크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대놓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 안에 전투헬기가 착륙했고 총을 든 무장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 안으로 침투했다. 비상계엄을 위해 필요한 ‘유효한’ 국무회의는 없었다. 포고령엔 국회 봉쇄를 명시했다. 계엄발령자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면 탄핵을 반대하고 수괴의 구속취소에 박수를 쳤을까. 계엄에 맞선 이들을 ‘죽음의 명단에 들어가도 마땅하다’고 치부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사를 오간 이재명 대표 피습에 ‘목 긁힌 것’이라고도 했다. 경쟁자 상대방에 대해서는 죽음조차 조롱할 것 같은 메마른 정치인들이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자식의 죽음에 대해 …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말해 징역형을 선고받고(형사 항소심) 1억26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령받은(민사 항소심) 막말사건이 일상화되는 분위기다.
여야 합의로 국회 문턱을 넘어선 연금개혁안에 대해 대선주자들이나 ‘젊음’을 앞세운 의원들의 세대갈등 유도 발언에서도 ‘공감 부재’를 만날 수 있다. 청년들의 부담과 이들의 부모인 고령층의 빈곤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들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각자도생을 부추기며 공동체를 깨려는 시도로 읽힐 정도다.
지난해 국회 연금특위는 과거 고리원전 재가동, 대입 시험 결정 때처럼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다. 500명의 시민들을 모아 숙의과정을 거쳤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고 조별토론, 전문가들과의 질의응답 등을 거쳤다. 그랬더니 ‘연금 인상률을 낮추고 현재와 같이 받는’ 재정안정론보다 ‘인상률을 높이고 소득대체율도 크게 높이는’ 소득보장론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청년세대로 마찬가지였다.
공감의 부재는 대화의 부재에서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대화 부재의 정치는 이미 일상이 됐다. 공감 리더십의 부재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타들어가게 하고 있다. 산불 연기 가득한 터널 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