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미중 간 AI결전은 시간문제다
인공지능(AI) 산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올해 1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 수준에 버금가는 모델을 출시하며 판을 뒤흔들었다. 딥시크 출현을 기점으로 미국은 절대강자 독주 시대에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쟁 시대로 내몰렸다. 딥시크는 AI 모델 발전의 패러다임을 모델 확대로부터 모델 효율화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률적으로 소수점 15자리까지 연산하는 대신 불필요한 경우 연산을 2~3자리로 줄이는 방식(FP8), GPU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알고리즘, 문제해결에 필요한 AI만 활성화하는 전문가 혼합(MoE), 대규모 언어모델의 성능을 소형 모델에서도 활용 가능케 하는 지식 증류 등 다양한 혁신을 도입해 대폭적인 비용절감을 달성했다. 딥시크의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효율화 방식 도입은 대형화를 지향하던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딥시크는 AI 산업의 게임 체인저
작년 여름 골드만삭스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기술개발 투자가 총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수익성 문제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이 와중에 획기적인 비용 절감 혁신에 성공한 경쟁기업이 출현했으니 1970년대 적시생산방식(Just-In-Time, JIT)을 개발해 미국기업을 제치고 세계 강자가 된 일본기업의 출현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최초의 검색엔진 넷스케이프를 공동 창업한 안드레센은 딥시크의 모델을 보고 AI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표현하면서 미국기업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미국기업들에게 더욱 큰 문제는 딥시크가 시장의 구조를 뒤흔드는 저가 책정과 오픈소스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저가 책정은 작년 5월에 이미 중국 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딥시크는 ‘딥시크 V2’ 모델을 출시하면서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API 사용료를 100만 토큰당 1위안으로 책정했다. 이에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 같은 서비스를 하던 기업들이 모두 가격을 내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픈소스 전략으로는 상업용을 포함해 모든 사용자에게 코드와 데이터까지 완전히 개방했다. 이에 따라 개발자 중소기업 개도국 등을 비롯해 광범위한 활용이 예상된다. 실제로 인도 아세안 중동 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지칭되는 국가들에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에 가장 위협적인 사태는 중국정부가 나서서 자국의 AI 모델을 국가전략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산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AI 모델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자국의 AI 산업 육성을 지원한다면 그 제안을 거절할 개도국들이 얼마나 될까. 이를 통해 중국은 자국 AI 산업 생태계를 글로벌화하면서 국제적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가격인하 압력을 받으면서 시장이 축소되는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격이다.
먹구름에 휩싸일 한국산업 출구는 없나
파괴적 혁신개념을 유행시켰던 크리스텐슨도 도전기업이 저가전략으로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오픈소스를 채택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오픈소스를 채택한다는 것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조직과 인재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AI 경쟁에서의 미중간 건곤일척은 이제 시간문제다. 만약 미국이 단기간에 기술격차를 벌려 다시 지배적 위치를 되찾는다면 구름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다. 반면 중국이 글로벌 AI 생태계를 확장하면 미국의 햇빛은 점차 가려질 것이다.
어떤 경우가 됐건 경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AI 기술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중국과 치열한 제조업 경쟁을 치르는 우리나라는 미중 AI 경쟁의 불똥을 맞지 않도록 유비무환해야 한다. 주 52시간에 묶여 있는 연구개발의 족쇄를 푸는 것이 바로 그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