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잠재적 핵무장론도 백해무익하다

2025-04-01 00:00:00 게재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월 11일 외교부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독자핵무장론을 언급함으로써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질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한민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는 참모들이 ‘수습’에 나섰고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 대변인들도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소동’은 4월 26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선언’에서 미국은 확장억제를 강화해 제공하기로 하고,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와 한미원자력협정의 준수를 재확인’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사실상 자체 핵무기 보유의 포기를 약속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독자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든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임기 첫날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악관은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추구한다고 발표했지만 트럼프는 3월 14일 다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면서 인도나 파키스탄 사례를 들기도 했다.

독자핵무장 주장은 주로 보수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들과 보수적 학자들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트럼프 발언 이후 국회 세미나와 학회 활동, 언론기고 등을 통해 여론의 공감대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도 소위 ‘잠재적 핵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독자핵무장론

지난달에는 미국에너지부가 올 1월 초 발표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한국이 목록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추가된 것으로 드러났다.(4월 15일 발효 예정) 한국 외교부는 그 이유가 미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관련 문제로 ‘파악’했다지만 인도 파키스탄과 나란히 지정된 한국이 핵확산 우려의 대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는 합리적 추정을 배제하기 어렵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이 문제마저도 정쟁의 대상일 뿐이다.

차제에 독자핵무장론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지를 지금까지 제시된 논거들을 포함해 정리해 보자.

첫째, 미국의 강력한 반대와 제재를 피할 수 없다. 핵비확산은 미국의 변함없는 최우선 안보정책 중 하나다. 이를 한국이 거부한다면 미국도 확장억제를 거부하고 한미동맹은 파괴될 것이다. 둘째,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핵공격 표적이 된다. 그 나라들은 한국의 동맹이 아니기에 핵억제 전략의 기본에 충실히 따를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무장을 사후에 정당화해 주게 된다. 남북이 대등한 핵보유국으로서 상호 억제와 군비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고 억제의 불안정성과 핵전쟁 위험성은 오히려 증대하는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 넷째, 한국까지 핵무장을 하면 일본도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북아 6개국이 모두 핵보유국이 되면 이 지역은 ‘핵무기고’가 된다.

다섯째,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국내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적으로도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한국은 외교적 고립 속에 경제제재와 핵연료 및 의료용 핵물질 금수 조치 등을 견뎌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핵 관련 시설과 핵무기 저장고 등의 부지 선정 문제로 극렬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여섯째, 민족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전반적 남북관계의 개선과 공동번영의 가능성이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국가적 위협뿐 아니라 인류적 위협도 성찰

독자핵무장론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 ‘잠재적 핵무장론’이다. 핵무기 자체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 능력 만큼은 구비해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잠재적 능력’의 보유라는 것도 본질은 ‘실제 능력’으로 가는 중간 과정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핵 잠재능력이란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금지된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가 핵심이다. 만일 이 단계에 들어선다면 핵무장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앞에서 제시한 비현실성과 위험성이 ‘잠재적’으로 적용될 것이고 그 결과는 상당히 ‘현실적’일 것이다.

아마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핵무기의 ‘국가적’ 위협뿐 아니라 ‘인류적’ 위협에 대해서까지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문장렬

전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