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오직 믿고 기댈 곳은 법관의 양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가 기약 없이 늦어지면서 온 국민의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헌법재판소 내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러다 사달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궁금증을 넘어 불안감, 초조감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윤 대통령이 재판에 회부된 초기만 해도 헌재 결론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뜬금없이 발동된 12·3 비상계엄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선에서 동의할 수 있었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재판관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란죄를 다투는 형사재판과 달리 헌재 재판은 징계여부를 다투는 만큼 간단한 사안에 대해 빠르고 명쾌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대부분 예상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헌재 결정을 자신 있게 예측하곤 했다. 이들은 “3월 첫째주에 선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가 빗나가자 “3월 14일이 예정일”, “늦어도 3월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망을 거푸 갱신했다.
필자 또한 한달 전 이 지면에서 "선고열차는 이미 출발했기에 9번째 신임 재판관 임명 여부는 더 이상 변수가 될 수 없고 기존 재판관 두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4월을 맞기 전에 결론 날 것"이라고 쓴 기억이 생생하다. 결과적으로 모조리 허언(虛言)이 됐으니 그저 무색할 따름이다.
헌재 재판관 퇴임까지 선고 지연 우려
언론에선 이제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빠짐없이 꼽아본다. 여러 분석과 가정(假定)이 제기된다. 8명 재판관의 의견이 5대 3으로 갈려 9번째 재판관 임명문제가 다시 변수로 떠올랐고 이 재판관 임명을 관철하기 위해 국회가 권한쟁의심판과 국무위원 줄탄핵 헌재법 개정 같은 정치적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재판관 두명이 퇴임하는 날까지 선고가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놀라운 전망도 있다. 헌재 재판연구원장을 지낸 로스쿨 교수가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문 대행이 선고 없이 퇴임하는 위기 상태로 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상상해보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이 경우를 가정해보자. 두 재판관 퇴임 때까지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되어야 할 헌재는 졸지에 6인 체제가 되어 어떤 선고도 하기 어렵게 된다. 재판관 빈 자리를 채우면 되지만, 그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어 해법 찾기가 난망하다.
퇴임하는 재판관 두명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자리다. 원래 지금쯤 그 자리에는 대통령 지명을 받은 후임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취임 준비를 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어 직무 정지되면서 지명받은 후임자는 없다. 대통령 유고에 따라 권한대행이 있지만 권한대행은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대신 행사하는 데 제약이 있다.
대통령 몫도 아니고 국회 추천 몫의 재판관에 대해 여야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임명하지 않은 사람이 권한대행이다. 그렇게 6인 체제가 지속되면 헌재는 그 자체로 시비에 휘말리고 대통령 탄핵 심판사건은 공중에 떠 버리게 된다. 죽도 밥도 아닌 혼란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재판관들이 이런 상황이 오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8인 체제가 일단락되는 4월 18일을 선고 마감일이라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더 이상 헌재를 압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헌재가 다른 사건에 앞서 이 사건을 최우선 처리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지키지 못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헌재는 사건의 본질을 함께 짚어보며 찬찬히 해법을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헌재법상 선고는 사건 접수 180일 이내(이 사건의 경우 6월 11일)에 하도록 돼 있으니 4월 18일이면 늦은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를 향해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없이 계속 미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헌정질서위반”이라며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내야 국정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고를 독촉하다 나온 명백한 실수 발언이다. 헌재 평의는 비공개 원칙이어서 선고 연기 이유를 국민에게 이해시킬 방법은 없다.
법적 마감시한 내 선고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헌정질서위반이라 할 수도 물론 없다. 무엇보다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 내면 절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법관으로서 직업적 양심에 따른 판결 기대
헌재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최근 다소 떨어진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믿고 기댈 곳은 헌재 양심 밖에 없다.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한다”고 할 때의 양심이다. 여기서 양심은 진보 보수 성향 같은 개인의 양심(자기 생각)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사회정의를 위해 행사한다는 직업적 양심이다. 법관으로서 양심에 충실하다면 이 사건 8 대 0 결론은 당연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