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멀어져만 가는 ‘AI 강국의 꿈’
의대생들이 복학 시한을 앞두고 대거 강의실로 돌아오고 있다. 의사들의 반대와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빚어진 ‘의대 사태’가 한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더 큰 숙제는 이제부터다. 의사 몇명을 더 뽑느냐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동안 세계는 인공지능(AI) 인재 확보 전쟁에 돌입했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중국은 2024년까지 2000개 이상의 AI 관련 학과를 개설했다. 이중 300개 이상은 베이징대 칭화대 같은 명문대에 집중됐다. 세계 AI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중국의 꿈’이 2000개 AI 학과로 구현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국에서 의대는 최고 성적의 우등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중국 이공계 수재들이 AI와 반도체 분야로 몰리는 동안 우리 수재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십수년을 바쳤다. 의대 증원으로 이런 인재 쏠림이 더 심화한다면 미래산업의 경쟁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미국 중국은 AI로 달리는데 의대증원에 발목잡힌 한국
바이오헬스 기업들은 AI 인재풀이 좁다고 아우성이다. 바이오헬스뿐일까? 제조·금융·물류 등 AI 도입을 시도하는 모든 산업에서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결국 게임·포털 등 IT 기업에서 인재를 데려와 부랴부랴 AI 교육을 시키는 실정이다.
한국의 AI 수준은 겉보기에는 미국 대비 88.9%, 1.3년 격차로 그럴 듯해보인다. 하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우려가 크다. 투자 규모만 봐도 미국 1300조원, 중국 1900조원 계획과 달리 한국은 연간 벤처투자는 고작 10조원에 불과하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2020년 이후 AI 관련 논문 수에서 미국을 추월했고 특허 출원수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약진은 눈부시다. 화웨이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자체 AI 칩(기린 9000s)을 개발해 휴대전화 메이트60 프로에 탑재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성과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우수 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한국의 AI 연구인력은 미국의 1/10, 중국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AI 인재 양성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세계적 수준의 교수진이다. 오픈AI나 구글 같은 기업에서 AI 전문가 초봉은 10억~20억원이다. 중국은 국가차원의 ‘천인계획’ ‘만인계획’ 프로젝트 아래 파격적인 조건으로 해외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런 인재를 대학에 유치하려면 파격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최근 세계적 AI 석학들을 영입한 사례는 고무적이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AI 인재 양성의 근본문제는 대학 경쟁력이다. 2019년 한국 대학생·대학원생 1인당 공공재원은 4318달러로 독일(1만5918달러), 프랑스(1만3650달러), 미국(1만2612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16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돼 대학 재정은 메말랐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탄탄해야 우수 교수 영입과 장학금 확대가 가능하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 없는 나라에 AI 강국의 꿈은 허상이다.
중국 베이징시는 올해부터 초중생들에게까지 의무적으로 AI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프로젝트’로 AI를 육성하는 중국과 달리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에 진학시키려고 과외를 시키고 있다.
AI 인재 확보경쟁 뒤지면 국가지속성마저 위태로울 것
AI가 가져올 경제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AI 도입은 한국 경제 생산성을 최대 3.2%, GDP를 최대 12.6% 높일 수 있다. 챗GPT 등장 이후 기술진화 속도는 예측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지금 AI 인재를 놓친다면 그 파장은 단순한 기술격차를 넘어 국가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는 일차적으로 AI 인재 확보에 달려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이 급감하는 우리 현실에서 AI는 생존의 문제다.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다. 중국이 질주하는 사이 우리는 여전히 출발선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AI 강국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면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다.
의대 증원 논란이 일단락된 지금 우리 사회가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이공계 인재 유출 문제다. 한국의 창의적 인재들이 의대 쏠림으로 사라지는 동안 중국은 2000개 AI 학과에서 미래를 선점하고 있다. ‘의사 몇명 더 뽑을까’ 논쟁으로 허비한 1년의 세월, 그사이 우리는 미래산업 경쟁에서 또 한바퀴 뒤처졌다. 인재 확보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