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너무 오래 걸린 탄핵 선고일 지정

2025-04-02 13:00:18 게재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잡혔다. 4월 4일 오전 11시.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최종변론을 끝내고 평의·평결에 들어갈 때만 해도 머잖아 선고일이 잡힐 것으로 예상됐다. 늦어도 3월 중에는 끝날 것으로 보였던 탄핵선고가 차일피일 마냥 늦춰지면서 온갖 억측과 음모론이 나돌았다. 천신만고 끝에 구속시킨 윤석열 대통령이 버젓이 풀려나는 황당한 일까지 겪으면서 국민들은 또다시 계엄악몽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누가 봐도 내란행위가 명백한 사안을 놓고 선고기일 지정이 계속 지연되는 비상식적 상황이 벌어지면서 민주주의 수호기관으로서 헌재의 존재가치를 묻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는 폭발직전 상황이 빚어졌다.

8인체제에서의 선고 결정, ‘전원일치 파면’ 기대감 커져

탄핵선고 결과가 어찌 나올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선고일이 잡혔다는 것 자체가 탄핵이 인용돼 파면이 확정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싣는다.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상당하다. 워낙 중대한 결정이고 관행이긴 하지만 헌재 재판부가 선고를 언론에 생중계하고 일반방청객을 받겠다는 것은 그만큼 법리전개나 선고 결과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덕수·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의 뭉개기로 진보성향 재판관 마은혁 후보자가 미처 채워지지 않은 8인체제 상태에서 선고일을 잡은 것은 그의 의견이 더해지지 않더라도 파면결정이 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게끔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헌법재판관들이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나 오로지 헌법과 법리,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면 탄핵의 인용이 아닌 기각이나 각하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중론이다.

탄핵을 가름할 5대 쟁점을 간략히 짚어 봐도 파면 결정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5가지 중 하나만 충족해도 파면대상인데 이들 모두에 해당한다. 첫째, 비상계엄 선포과정을 보면 요건상 필요한 ‘전시나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고, 형식요건인 국무회의 심의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둘째,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한 포고령 1호 내용 자체가 위헌이다. 셋째, 무력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침탈한 행위는 온 국민과 전 세계인이 생생히 지켜봤다. 넷째, 헌법기관인 선관위 장악시도도 위헌이며, 다섯째, 법관·정치인 불법체포 시도도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다. ‘8대0 전원일치’ 파면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분명한 법리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밤잠을 못 이루고 국정이 불안정해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 것은 우리 민주주의 체제가 그만큼 견고하지 못해 상식이 통하지 않고 비정상이 판쳐왔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국민 모두가 실감한 것은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린 기득권세력, 내란동조세력의 암약이다. 검찰은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와 선택적 수사로 조직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 특히 윤 대통령을 교도소에서 빼주기 위해 심우정 검찰총장이 벌인 즉시항고 및 보통항고 포기조치는 너무도 충격적이라 이런 검찰조직에 계속 수사권을 맡겨도 되느냐는 근본적 의구심을 더욱 키웠다.

조기대선 통해 한계 드러낸 ‘87년체제’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우리사회 고위공직자들의 허상과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한덕수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의 행태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사명감은커녕 헌법재판소가 두번이나 위헌 결정을 내린 사안을 대놓고 무시하며 내란상태를 지속시켜 국민고통을 가중시킨 죄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 앞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예상되는 조기대선을 공정하게 치러야 하는 과제와도 직결된다. 대선을 거쳐 민주체제가 들어서면 차제에 곳곳에 구멍과 한계를 드러낸 ‘87년체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 그 즉시 형사상 불소추특권이 박탈된다. 명태균게이트, 공천개입 의혹, 채 해병 순직사건 외압행사 등은 물론 평양상공 무인기 침투 등 외환죄 혐의도 즉각 수사해야 한다. 그동안 힘으로 억눌러왔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도 낱낱이 파헤쳐야 마땅하다. 탄핵선고를 계기로 온 국민이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 첫걸음은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하는 일부 극렬세력의 폭력시위나 난동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단속하는 것이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