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의 러시아 톺아보기

푸틴의 시선은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상’에 가 있다

2025-04-03 13:00:05 게재

우크라이나전쟁 휴전 협상에 임하는 러시아의 태도에서 조급함을 읽을 수 없다.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도 지난 3년여간 혹독한 전쟁 수행에 인적 물적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은 러시아에도 절박한 과제였다.

푸틴의 시선 ‘유라시아 안보 구조’ 향해

하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승전은 이미 목표가 아니다.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다극화 세계질서에 부합하는 ‘유라시아 안보 구조’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 구상을 처음 공론화한 것은 작년 초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2월 29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가까운 미래에 “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분리 불가능한 안보(indivisible security)의 새로운 윤곽”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6월 14일 러시아 외무부 회의에서는 유라시아에서 외국 주둔군을 점차 줄여나가고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 후 러시아, 유럽을 포함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상하이협력기구(SCO) 파트너들과 함께 안보 구조를 구축하는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7월 4일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서 개최한 SCO 정상회의에서는 이 구상을 공식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일방적으로 특정 국가들에 이익을 주는 유럽 중심의 유로-대서양 모델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종합하면 유라시아 안보 구조란 다음의 성격을 갖는다. 첫째, 다극적·다자적 세계질서의 형성이다. 둘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렵안보협력기구(OSCE)를 대체하는 새로운 안보 모델이다. 셋째, 안보 구조는 외부(미국)의 후원 없이 구축된다. 넷째, 유럽과 나토 국가들을 포함한 모든 유라시아 국가들에 개방된 구조다. 다섯째, 각국의 안보 우려 존중 및 ‘불가분의 안보’원칙이 적용된다.

이후 푸틴 대통령의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상은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구성하는 핵심어로 부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배경과 의도를 국내외에 설명하고, 공감대 확산에 공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관계 전문가들도 거들고 나섰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싱크탱크 ‘발다이 클럽’의 프로그램 이사인 이반 티모페에프 박사는 유라시아 안보 구조가 견지해야 할 핵심적인 원칙을 다음과 같이 집약했다. 첫째, 대화와 책임 분담 원칙이다. 나토의 미국처럼 한 나라의 압도적 우위는 배제하고 관심국들의 폭넓은 참여와 책임 분담을 전제한다는 원칙이다. 둘째, 다차원적 안보 접근이다. 군사만이 아닌 하이브리드 위협, 사이버 보안 위협, 내정 간섭, 경제·금융의 정치화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는 원칙이다. 셋째, 유로-대서양 안보 구조에서는 실현되지 못한‘불가분의 안보’원칙이다.

한편 유라시아 안보 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내용적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학계의 논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반 티모페에프 박사는 ‘발다이 클럽’에 ‘유라시아 안보 구조: 5문 5답’ 제하의 해설을 기고했다. 그는 우선 유라시아 안보 구조가 마치 미국에 대항하는 연합처럼 비치는 의혹에 대해서는 ‘노’라고 답했다.

그는 국가마다 여러 이유로 대미 관계가 다를 수 있기에 “각국의 대미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보고, 유라시아 안보 구조에 그런 의도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답했다. 또한 집단서방과 달리 왜 유라시아 안보 구조는‘이념적 원칙’을 통합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최대의 지정학적 저항’이라 표현했던 구소련 해체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합리주의적이라 할지라도 국제관계의 복잡성을 획일적인 이념적 그림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결과는 “원칙의 희석과 평가 절하, 그리고 투기적이고 항상 작동하지 않는 계획에 대한 이익의 희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푸틴의 지정학적 한계 돌파 위한 ‘지전략’

그렇다면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상에 깔린 러시아의 배경과 의도는 무엇인가? 공간적 측면만 놓고 보면 연결성과 상호관계 네트워크의 중심을 유라시아에 집중한 대외정책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201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리스본에 이르는 유라시아 통합 프로젝트’를 제기했다. 이후 ‘확장된 유라시아 파트너십(Greater Eurasia Partnership)’은 미국 등 집단서방을 대체할 유라시아의 새로운 지전략공동체 구상으로 인식되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축은 ‘확장된 유라시아 파트너십’의 형성 과정을 보완, 강화하는 것이라 여겼다.

다른 한편으로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상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촉발된 위기에서 벗어나고 지정학적 한계를 돌파해 나가려는 러시아의 ‘지전략’ 프로젝트다. 외형적으로 러시아는 유럽·나토 회원국들을 포괄하는 구조를 가정한다. 포괄성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럽과 미국을 분리시키고 역외 세력인 미국의 영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안보협력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고려를 대외정책에 ‘정상적'으로 반영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서방의 제재를 겪으면서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는 심화되었고, 동방과의 무역·산업 협력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서쪽에서 동쪽으로 국가 안보와 발전 전략의 벡터를 전환하고,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안보를 모색하자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과의 긴밀한 대화는 최우선적인 전략 방향이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중국과의 포괄적 파트너십 및 전략적 협력 관계는 전례 없는 수준의 상호 신뢰를 쌓고 있고, 러시아의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축도 중국과의 긴밀한 사전 교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2024년 6월 19일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도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저 동맹관계를 복원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가 중국 인도 이란과 함께 북한을 유라시아 안보 구조의 핵심적인 축으로 통합하는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전쟁이 종결되면 동맹으로서 북한의 가치도 하락하고 북러관계도 재차 쇠퇴할 것이라는 주장은 빗나간 예측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가 지적했듯이 북러간 전략적 협력의 토대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

위의 조류가 유라시아의 수평축을 강화하는 동방 벡터라면 최근에는 수직축의 남방 벡터도 발견된다. 최근 러시아가 아세안 국가들과 연대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2024년 7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과 군사기술, 경제 및 인도주의 협력, 원자력 분야 교류, FTA 체결 가능성 등에 대해 논의했고 마침내 2025년 1월 6일 인도네시아가 브릭스 정회원국으로 공식 가입했다. 이 외에도 러시아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베트남을 포함해 말레이시아와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교통물류 연계를 넘어 제조 가치사슬 구축까지 시도되고 있다.

'유라시아 구상'은 우리에게 큰 도전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상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추세적으로 강화되면 북러·중러 양자관계의 밀착은 조만간 북중러 북방삼각을 재촉할 것이다. 한반도가 동북아 열강들이 각축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면 피할 길은 없다.

따라서 지전략의 공간을 유라시아로 확장해야 한다. 동북아에서 벗어나 유라시아의 북방과 남방을 단일한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역내 국가들간 분열과 파편화의 틈새를 벌려야 그 속에서 생존의 공간과 출로를 모색할 수 있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