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민주시민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2025-04-03 13:00:03 게재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4월 4일로 지정했다. 워낙 지체된 상태인데다 만우절인 4월 1일에 공표되어 ‘거짓 장난’ 아니냐며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술 한 잔 하자”고 여기저기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정국과 극심해진 사회갈등 때문에 사람들이 깊은 피로감에 젖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주변의 정치학자들과 법조인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광장과 거리의 한켠에서 극우파의 탄핵반대 목소리가 드세고, 이에 편승해 국민의힘 주류가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규범의 준수와 헌정체제 수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도 인용될 거라 예상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탄핵 인용 자체를 ‘민주 시민의 진정한 승리’라며 축배를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탄핵 인용은 혼란한 정국의 끝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끝의 시작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시작의 끝이라고나 할까.

민주주의 규범과 헌정체제의 파괴 시도는 이제 겨우 비상계엄 선포 사태라는 극적 형태의 시작 단계를 마무리하고 있을 따름이다. 앞으로는 극적이지는 않아도 한층 더 지루하고 고된 일상적 정치과정과 심층적 사회갈등으로 전개될 단계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즉 민주주의 규범 준수와 헌정체제 수호세력은 한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조기 대통령 선거라는 전투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 승리도 여전히 전쟁에서의 승리, 진정한 승리는 아니다.

탄핵 인용 ‘민주시민의 진정한 승리’ 아냐

우리는 이번 12.3사태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크게 두가지를 확인했다. 하나는 윤석열 정권을 받들고 있는 고위 행정-검찰 관료와 국민의힘 친윤계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우파 보수 통치엘리트의 ‘반체제성향’과 ‘의도적 무지’다. 그들은 정당한 경쟁자인 야당과 자신에 대한 비판세력을 반국가세력과 적으로 몰아 절멸시키기 위해 헌정체제를 뒤엎는 위헌적 비상계엄마저 비호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법원 침탈을 한 폭도를 ‘애국시민’이라며 옹호하기까지 했다. 또 그런 폭력과 위헌-위법적 인식과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선거론마저 유포하며 사실과 진실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그런 우파 보수통치엘리트들을 독려하고 지지하며 믿고 따르는 극우파 사회세력의 존재와 힘이다. 2000년대 초를 거치며 ‘뉴라이트’라고 불리며 경제민주화론마저 수용해 박근혜정권을 낳았던 이들과 결이 다른 극단세력이다. 극우파 유투버의 거짓정보와 지식에 기대어 폭력적 언동을 서슴치 않는다. 작정하고 나선 반지성주의자들이며 행동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우파 보수 통치엘리트와 동맹 혹은 제휴를 이루어 정국의 향방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간에서 탄핵 기각 및 각하의 가능성이 실재하고 실현될 거라는 전망을 낳을 정도다.

민주시민의 진정한 승리는 정국과 삶의 안정을 해치는 우파 보수 통치엘리트와 극우파 사회세력의 퇴출이다. 변형된 것이든 제한적인 것이든 지금까지의 한국민주주의가 김영삼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전두환 신군부 세력(하나회)의 퇴출로 가능했던 것처럼.

문제는 승리의 방법이다. 김영삼정권이 신군부 세력 퇴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 지지에 바탕해 금융실명제같은 전향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동반 추진한 덕이었다. 악과의 싸움 자체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을 향한 ‘선한 힘’을 발동시켜야만 악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 위해 ‘대한민국 재설계’ 나서야

검찰개혁을 내세워 힘자랑을 하다가 조국사태를 거쳐 윤석열에게 정권을 헌납했던 문재인정권처럼 접근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 조기대선을 거쳐 등장할 새 정권이 민주시민의 진정한 승리를 원하고 대표하려면 그와 같은 ‘역사 속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시민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새로운 정권의 등장에만 머무르면 안된다. 민주시민 역시 2016~2017 촛불집회를 거치며 제기되었으나 지연되고 있는 ‘대한민국 재설계’의 재개에 나서야 한다. 새 정권이 그 길로 가게끔 해야 한다. 악의 퇴출은 그래야 가능하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휴마니타스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