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돈은 갈 수 있지만 사람은 어찌할까

2025-04-03 13:00:04 게재

얼마 전 중견 철강회사 CEO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로 걱정이 많았다. 미국은 수입산 철강에 대해 25%의 관세를 지난 3월부터 부과하고 있다. 철강은 마진이 많이 남지 않는 비즈니스인데 25%의 관세 부담을 미국 내 최종 수요자에게 전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한다. 관세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한 현대차처럼 말이다.

철강회사 CEO는 현대차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마진율이 낮은 철강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도 어렵지만 미국 공장을 운영하는 비용(operation cost)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공장에서 일할 양질의 노동자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에 세계 최고 첨단생산 시설 가진 현대차 매우 예외적 상황

현대차는 다소 예외적인 경우이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생산업체들 중 현대차의 자동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 공장은 세계 최고의 첨단 생산시설로 평가 받는다. 1000대가 넘는 조립용 로봇과 수백 대의 부품운반 로봇이 노동자들을 대신하고 있다.

현대차는 오래 전부터 자동화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했던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었다. 울산과 아산의 생산시설도 이젠 숙련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공장이 아니다. 공학지식으로 무장한 엔지니어들의 공정 설계가 요즘 현대차 경쟁력의 핵심이다.

197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미국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만든 표준에 기반해 생산하는 분업구조를 발전시켜왔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이 대표적인 예이다. 애플은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 회사이지 생산을 하지는 않는다. 애플의 아이폰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동아시아의 부품 업체들로부터 납품을 받아 대만의 폭스콘에서 조립한다. 이제는 미국이 생산까지 미국땅에서 하라고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처럼 축적해 놓은 자본잉여가 크고 자동화된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들은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시장으로서 미국이 가진 매력이 크기 때문이다. 여유 자본이 부족한 기업은 미국에 투자하고 싶어도 못할 테지만 돈이 있더라도 미국 노동시장이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교육은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리가 있지만 이런 교육 시스템은 글로벌 분업구조의 산물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이디어 창출이 아니라 정해진 공정대로 잘 만들어내는 인력이 필요했고 교육도 이런 인재들을 만들어 내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표준화된 생산을 위해서는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천재들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배출하는 대규모 기술인력이 필요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찬양하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배출해 내는 것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지만 동아시아와 같이 생산인재 육성까지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압박에 글로벌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 만만치 않아

반도체산업에서는 전문 인력의 부족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 피닉스에 4나노 파운드리 공장을 완공한 대만 TSMC는 교육받은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데 컨설팅업체 맥킨지 역시 미국에서 부족한 반도체 인력이 2029년에는 14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 윽박지르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쉽지않은 선택이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돈을 쓸 마음이 있어도 사람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글로벌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