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더 낸 일본보다 '상호관세율' 높아
산업부장관 방미에도 “한국이 관세 4배” 트럼프 정부 인식 못바꿔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임에도 트럼프발 관세폭탄을 앉은 자리에서 맞았다.
특히 FTA 비체결국인 일본(24%)보다 높은 25%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올린 무역흑자 규모도 크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일본과의 교역에서 685억달러, 한국과의 교역에서 660억달러 각각 적자를 기록했다.

◆“상호관세율 적용은 미국 자의적 조치” = 트럼프 행정부는 2일(현지시간)에도 여전히 “한국이 미국에,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번 상호관세 부과는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사실상 종료하고 10% 수입관세를 부과한 닉슨 대통령의 ‘닉슨 쇼크’ 이후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이 이처럼 보호주의의 상징인 관세 카드를 꺼내들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 체제는 출범 30년만에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향후 각국의 무역보복, 공급망 붕괴, 인플레이션 심화로 세계경제·교역 둔화가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3일 “우리가 FTA 파트너국인 것으로 고려하면 관세 25%는 너무 높게 적용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비관세장벽의 어떤 것을, 어떤 기준으로 고려했는지 불분명한 자의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는 세계경제 질서를 구조적으로 새롭게 뜯어고치려 하기 때문에 수출 기업들에게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미국시장에 대한 수출과 투자의 병행과 아울러 다른 시장들에 대해서도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 북중미 투자 확대 검토할 만 = 김용래 전 특허청장은 “이번 상호관세 부과는 트럼프 1기 정부 시절인 2018년 철강관세 부과 당시와 비슷하다”며 “여러 국가에 이렇게 고율의 관세를 때리면 미국도 못 견딘다. 미국 공급망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이 원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있다”며 “그 교집합을 잘 찾아 국가적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이제 정부간 협상의 시간이 도래했다”며 “대미 무역흑자 축소 노력, 한미FTA 취지,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대체에 있어서의 핵심역할, 향후 대미투자 확대 노력 등을 설명하여 관세인하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단기적으로 비용절감, 국별 상호관세를 고려한 생산재배치 등으로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준수 제품은 관세 면제가 유지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 북중미 투자를 늘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섬유 등 해외생산이 불가피한 산업의 경우 콜롬비아 페루 도미니카 등 상호관세가 낮은 국가에서의 생산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안보·경제문제에 대해 미국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니 이 부분을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안보 이슈에 협력할 부분을 구체화하면 관세폭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형 코트라 KOTRA 경제통상협력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수출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밀착 지원하는 한편 대체 유망시장을 발굴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MFN 관세율 포함하면 경쟁력보다 관세율 낮아 = 이와 관련, 코트라는 2일 미국이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에 기존 세율을 더할 경우 한국이 경쟁국인 일본 대만 중국보다 낮다고 분석했다.한국은 한미FTA 협정세율이 0%여서 이번 상호관세 25%를 더하면 최종 25% 관세가 부과된다.
반면 일본은 최혜국대우(MFN) 관세율 0~10%에 상호관세 24%를 더하면 품목별 24~34%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대만도 0~10%(MFN), 상호관세 32%이므로 최종 관세율은 32~42%다.
중국은 0~10%(MFN), 301조(7.5~100%), 대중보편관세(20%), 상호관세(34%)를 모두 합할 경우 61.5~164%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은 0~10%(MFN), 상호관세 20%로 최종 20~30% 수준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2007년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으며 현재 대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2024년 기준 0.79% 수준이다.
한국이 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MFN은 13.4%이지만,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미국에 MFN 관세를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인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2일(현지시간) 관세 정책 관련 브리핑에서 “우리의 MFN은 3.5%지만 한국은 13%”라며 “더 큰 문제는 비관세장벽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같은 우리의 많은 농산물을 전면 금지한다”고 말했다.
◆정부 “긴급 지원대책 조속히 마련” =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함에 따라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경제안보전략 TF 회의를 개최했다.
한 대행은 “글로벌 관세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매우 엄중한 상황인 만큼 통상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며 “자동차 등 미 정부의 관세 부과로 영향받을 업종과 기업에 대한 긴급 지원대책도 범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TF 회의 직후 경제부총리 주재로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해 미국의 관세 조치에 따른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이어 산업부 장관 주재로 ‘민관합동 미 관세조치 대책회의’를 열어 대미 아웃리치 등 업계와의 공동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