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윤 대통령…떠나는 사람들, 지키는 사람들
이복현 “탄핵이 경제에 낫다” … 한동훈, ‘황태자’에서 ‘반윤’으로
여당 중진들, 탄핵 저지 앞장 … 일각 “대선이나 전대 출마 노림수”
윤석열사단의 막내로 꼽히는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3일 국민의힘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힌 상법 개정안과 관련 “직을 걸고라도 (재의요구권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한덕수 권한대행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인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사의 표명을 했지만 주변의 만류가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상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여당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윤 대통령 탄핵이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경제에 낫다”고 밝혔다. 지난 1월에는 여권이 반대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한 최상목 부총리를 향해 “지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원장의 미묘한 행보를 놓고 “윤 대통령과의 정 떼기 수순”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권과 정부부처에 두루 포진한 윤석열사단에서 미묘한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윤핵관이나 친윤, 윤석열사단으로 불리던 윤 대통령 측근들이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잇따르는 것.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시발점이었다. 윤 대통령이 법무부장관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발탁하면서 ‘윤석열정권 황태자’로까지 불렸던 한 전 대표는 지난해 초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김건희 여사 문제를 직격하면서 윤 대통령과 급속히 멀어졌다. 지금은 윤 대통령 부부가 가장 싫어하는 ‘반윤 인사’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으로 발탁하면서 아꼈던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 입문 이후에는 한 전 대표와 더 가깝다는 관전평을 낳으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한때 친윤으로 꼽혔던 전현직 의원들도 대거 한동훈계로 옮기면서 친윤에서 호적을 팠다는 평가다. 일부 윤핵관조차 12.3 계엄 이후 주변에 “윤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속내를 털어놨다는 전언이다.
군과 공직 사회에서도 12.3 계엄 이후 윤 대통령에게 등 돌리는 모습이 잇따랐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증언해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도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계엄 이후 공직사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커졌다. (윤 대통령이) 설령 복귀한다고 해도 (공직 사회에서) 리더십이 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권 인사는 2일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의 독선적 리더십을 고집하고 극소수 측근과 모의해 계엄까지 저지르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많은 측근이 (윤 대통령 곁을) 떠나는 분위기”라며 “윤석열사단이 해체되는 건 윤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전히 친윤을 고수하는 측근들도 있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85명이 윤 대통령 탄핵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원조 윤핵관인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석 달 넘도록 탄핵 저지를 주도하고 있다. 나경원·김기현·윤상현 의원과 원희룡 전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도 반탄파(탄핵 반대)로 분주한 모습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은 내가 지킨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이나 전당대회 출마를 겨냥한 노림수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윤 대통령도 정치적 이해만 좇는 정치인보다 별다른 이해관계 없이 자신을 지지해주는 ‘아스팔트 우파’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낸다는 전언도 흘러나온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