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사건에 비친 재외국민보호의 허와 실

재외국민 피해 급증하는데 보호망 허술

2017-01-24 10:08:31 게재

163개 재외공관 사건사고담당 영사 66명뿐 … 인력·예산부족, 법과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2조 ②항에 명시된 국가 의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큰 논란이 됐던 멕시코 양현정씨(39세·애견의류 디자이너) 사건은 '한인마피아'라는 누명을 쓰고 멕시코 교도소에 수감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국회의원들이 현지를 방문하고, 외교부에서도 뒤늦게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국민을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할 재외공관이 양씨 사건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적잖은 파장을 불렀다.

양씨가 영사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점은 물론이고, 연방법원의 암파로(헌법소원과 같은 일종의 이의제기) 수용결정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검찰이 항고를 하게 된 결정적 근거 역시 우리측 경찰영사가 서명한 확인서였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레 억울한 옥살이의 근거를 만들어준 셈이 됐다.

급증하는 재외국민 사건사고 = 비단 양씨 사건만이 아니다. 지난해 필리핀에서 교민들이 잇따라 피살당한 것을 비롯해 얼마 전에는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던 여대생들이 현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고도 현지공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조력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처럼 재외국민들이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피해를 당하는 사건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외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과 해외로 나가는 출국자수가 많아지는 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역시 많아진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2001년 대비 연간 해외출국자수는 3.2배 증가했다. 2001년 600만명에서 2015년 1931만명이 해외로 출국했다.

또 2015년 기준 재외국민은 250만명에 이른다. 이에 따른 재외국민 범죄피해 건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1년 500건에 그쳤던 범죄피해가 2015년에 8300건으로 무려 17배나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지난해 연말 작성한 외교백서에는 재외국민보호 정확한 실태보다는 성과만 늘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 비해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로부터 거듭 지적받은 내용이다.

박주선 의원(국민의당·광주 동남을)은 전세계 163개 해외공관의 사건사고 담당영사가 66명뿐이라 해외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과 사건사고처리 대응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해외수감자 관리예산 41%가 불용처리되고, 해외수감자에 대한 영사면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력부족에 시스템도 미비 = 이는 지난해 3월 감사원이 공개한 재외국민보호 등 영사업무 운영실태를 점검한 감사결과에서도 지적된 내용들이다. 당시 감사결과에 따르면 총 23건의 위법부당 및 제도개선사항이 확인됐고, 모범사례는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적사항 가운데는 △재외국민 수감자 관리 부적정(주의)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면회 업무처리 부적정(주의) △재외국민 사건·사고 처리 부적정 △체포·구금된 재외국민에 대한 영사면회 부적정(주의) △경찰 주재관 배치 부적정(통보) △재외국민 강력범죄 피해시 수사상황 관리 부적정(주의) 등으로 나타났다.

이인영 의원(더불어민주당·구로구갑)도 국정감사에서 "현재 외교부는 훈령으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업무지침'을 마련하고, 영사콜센터를 비롯한 5개의 대응시스템과 해외 안전정보 문자메시지등 8개의 예방시스템을 가동 중에 있지만 해외 우리 국민들의 사건 사고는 급증하고 있고, 우리 국민의 해외 수감 역시 늘어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를 국가별 유형별로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사전에 예방하는 세분화된 시스템 마련에 보다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의 첫 출발을 재외국민보호법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재외국민보호법안은 17대 국회 4건, 18대 국회 2건, 19대 국회 6건 등 12번이나 제출된 바 있지만 번번이 제정에 실패했다. 재외국민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국가책임을 어디까지 규정할지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훈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주멕시코 대사관과 담당 영사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는 재외국민에 대한 구체적인 시스템의 부족 때문"이라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관 담당자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거나 말로만 재외국민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재외국민 보호에 대한 시스템 전반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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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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