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인도 톺아보기
인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비동맹 외교의 변주곡
"2022년은 인도 독립 75주년, 미국과의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지난 4월 11일 인도 모디 총리가 미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독립 75주년인 2022년 인도는 강국의 꿈에 다가서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최고조로 향하고 있다.
화상 정상회의에 이어 워싱턴 D.C.를 방문한 인도의 라즈나트 싱 국방장관과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외교장관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제4차 외교·국방장관(2+2)회의를 개최했다. 2+2장관회의는 2018년부터 시작되었지만 바이든행정부 들어서는 첫번째다. 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인도적 위기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을 피했다.
대신 양자·지역·글로벌 차원에서 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코로나19 백신, 신흥기술, 인프라 및 공급망 회복, 기후변화 대응, UN의 역할 강화 등에 대한 폭넓은 협력을 다짐했다.
인-미 정상회담과 2+2장관회의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약간의 불협화음을 냈던 양국 관계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서방세계에 대한 도전이자 신냉전 부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인도는 미국이 주도한 대러시아 규탄과 각종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인도의 독자행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나아가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핵심 멤버로서의 역할에 의구심을 낳고있던 터였다.
중국 견제 위한 '자연스러운 동맹'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체제에 들어선 이후 공격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팽창주의 정책은 중국과 3488km의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더구나 한차례 전쟁을 치른 바 있는 인도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중국의 패권적 부상과 함께 남중국해 동중국해 인도양 및 내륙 접경지역에서의 도발, 중국산 제품의 인도시장 잠식 등은 인도에게 통상-안보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야기했다. 중국의 팽창주의 정책에 대한 우려는 인도가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새로 정립하고 세계 외교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 벵골만 인도양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안보회랑'을 건설하는 21세기 해양실크로드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인도-미국 관계는 사상 최고의 밀월 국면에 접어들었다.
모디정부는 2015년의 인도 독립기념일 행사에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주빈국으로 결정, 오바마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때 양국 정상은 '아시아태평양과 인도양에 대한 공동의 비전'과 '인-미 국방관계협약'을 발표했다.
이미 2001년 9.11 테러 이후 군사안보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시작했던 인도와 미국은 2002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2016년 '군수지원협정'(LEMOA), 2018년 '통신 상호 운용성 및 보안협정'(COMCASA), 2020년 '기본교류협력협정'(BECA)을 체결함으로써 군사분야의 중요한 4대 협정을 모두 체결했다. 인도는 중국의 급성장에 따른 자국의 안보 딜레마를 미국의 중국견제 전략인 아시아 재균형정책,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계해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인도는 당분간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미국이 전개하는 지역안보 전략, 쿼드에 어느 정도 편승하는 외교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해양안보와 관련해 2020년 11월 쿼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 것 외에도 2022년 2월 멜버른에서 열린 제4차 쿼드 외교장관회의 의제였던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반영된 국제법 준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 태평양 원칙 등을 통한 해양영역 인식 공유, 연안 자원개발 능력 향상, 항해의 자유 보장 등을 위한 연대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인·태 전략으로 미국과 파트너십 강화
물론 대외정책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인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인도는 2018년 미국과 일본이 수립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OIP) 개념에 '포용적인'(Inclusive) 원칙을 추가해,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인도·태평양'(FOIIP) 원칙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전략 개념에서 배타적인 성격을 최소화하려는 인도의 일관된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나아가 2019년에는 FOIIP를 발전시켜 인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인 '인도·태평양이니셔티브'(IPOI)를 발표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역의 지배적 전략이지만 인도는 인도만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원래 있었던 인도의 인도·태평양 (또는 인도양) 전략,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그리고 아세안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조화와 협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유럽의 안보위협이 증대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의 핵심전략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의 틀을 강화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인도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지난 2월 1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서'에서 "인도가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보다 확실하게 인도의 중국 견제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인도·태평양에 미래의 번영과 안정이 달려있다고 판단한 미국에게 인도는 미우나 고우나 함께 가야 할 동반자 국가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비동맹 노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위상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이러한 위치를 활용해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적 노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익에 부합하는 독자노선 추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인도가 두 진영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는 진영을 선택하지도 배제하지도 않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25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2020년 갈완 계곡에서의 유혈 국경충돌 이후 처음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왕이는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이웃한 고대 문명국가이자 28억 인구를 가진 최대의 개발도상국 리더라는 점을 강조하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를 함께 이끌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인도는 국경지역 분쟁해소 없이는 양국관계 진전도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의장국을 맡은 6월 브릭스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국이 인도와 같은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인도식 마이웨이가 통하는 것은 미국의 핵심 대외전략이 인도·태평양 전략이고, 여기서 인도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연유한 바 크다.
그럼에도 한국이 국익과 가치에 기반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이익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 전략의 변용을 가미한다면 한국도 변주곡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 한국만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