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료 인하 막는 수리·렌트비│(1) 치솟는 적자, 늘어나는 소비자부담

살짝만 긁혀도 무조건 '범퍼 교체' … 줄줄 새는 보험금

2015-05-27 11:10:04 게재

렌트비용이 수리비보다 비싼 경우도 … 모럴해저드 만연

일반 정비업체와 A/S사업소간 정비요금도 서로 달라

경미사고·외제차 느는데 대물배상제도는 여기저기 허점

#지난 2013년 2월 불법주차된 고가의 마세라티 차량이 다른 차량에게 접촉사고를 당했다. 뒷범퍼 왼쪽 모서리가 살짝 긁히는 피해를 입었을 뿐이지만 마세라티 차주 K씨는 가해차량 보험사인 A손해보험사에 미수선수리비 5000만원을 요구했다. 뒷범퍼 교체 등 수리비 1535만원과 30일간의 동종동급차량 렌트비 3900만원을 포함한 액수다. 수리견적이 과도하다고 판단한 A사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8월 부산지방법원은 미수선수리비 지급액 356만원으로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수리비 278만여원과 2일간 렌트비 117만원만 인정했다.


#지난 2011년 7월 이탈리아산 수퍼카인 파가니존다가 뒷범퍼 에어뎀 부위에 작은 흠집이 가는 사고를 당한 뒤, 가해차량 보험사인 B손보사에 수리비 1억3500만원, 15일간 렌트비(롤스로이스) 6331만원 등 약 2억원을 요구했다. B사는 수리비 300만원에 수리기간 이틀 동안의 렌트비 300만원을 합한 6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파가니존다 차주는 민원을 제기했다. 양측은 소송으로 갔고, 법원은 B사가 수리 및 렌트비로 1800만원을 지급하라고 민사조정을 했다.


지난 15년간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자동차보험료 영업적자는 계속 늘어 지난해 1조1000억원을 넘어섰다. 2000년 1만236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4762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동차보험 누적적자는 9조5766억원에 이른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박사는 "그동안 자동차보험 관련 법과 제도는 인적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서 "하지만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대를 넘을 정도로 환경이 달라지면서 물적피해의 비중이 커졌고, 이로 인해 자동차보험 손해율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급돠는 보험금 중 물적담보비중이 60% 이상 = 손해율은 지급된 보험금을 거둬들인 보험료로 나눈 비율로, 자동차보험의 모든 현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 지표다. 최근 5년간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3.6~88.4%로 적정수준(77%)을 크게 웃돌았다.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에 비해 지급한 보험금이 과다하게 늘어난 이유는 차대차 사고, 즉 대물손해 비중이 크게 높아진 때문이다. 2009~2013년 5년 동안 보험사가 내준 보험금 중 인적담보 보험금은 연 1.7%씩 늘었지만 물적담보 보험금은 4배가 넘는 8.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전체 지급 보험금 중 구성비는 2009년 물적담보 보험금이 54.3%,로 인적담보 구성비(45.7%)보다 8.6%p 높았지만, 2013년에는 60.3% 대 39.7%로 격차가 20.6%p로 확대됐다. 인적담보는 매년 3.5%씩 구성비가 줄어드는 반면, 물적담보는 2.7%씩 늘어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이 수치가 2020년이면 72.6%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적담보(대물담보)의 건당 손해액도 매년 평균 5.5%씩 늘어나고 있다. 대물·자차·대인·자손 등 전체 담보 증가율(2.8%)의 2배에 이른다.

또 물적담보 사고 중 소액사고, 특히 50만원 초과 100만원 이하 사고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2009년 61만6700건에서 2013년 93만4000건으로 52% 늘어난 해당 사고는 전체 대물담보 보험금 구성비에서도 24.1%에서 31%로 7%p 가량 늘었다.

입원 환자가 13일간 차량 렌트? = 문제는 이처럼 물적담보로 인한 손해율과 손해액이 늘어나는 배경에 늘어나는 경미사고와 함께 모럴 해저드나 연성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앞의 두가지 사례처럼 판금·도장만으로도 가능한 사고에도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비를 부풀려 보험금(미수선 수리비)을 타내고, 과도한 렌트비 지급을 요구하는 등의 사례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C손보사는 2013년 11월 차량사고 피해자 P씨에게 수리비와 입원비를 지급했다. 자동차보험 1인 한정특약에 가입한 P씨는 13일간 입원치료를 받는 동안 30일간의 렌트비를 요구해 350만원의 렌트비도 받아냈다. 사고로 다쳐 입원에 있는 환자가 차를 렌트해 몰고 다녔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셈이다.

30만원이면 되는 SM5 차량의 수리비 견적을 정비업체를 통해 70만원으로 제시하면서 렌트비도 334만원(12.5일)으로 통상가격(202만원)보다 130만원 이상 높게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반 정비업체와 자동차제작사 직영 A/S사업소간 정비요금이 들쭉날쭉한 것도 또다른 문제다.

보험료 인상 압박으로 전체 보험 가입자에 부메랑 = 수리비와 렌트비가 과도한 수준으로 올라가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건 날로 늘어나는 외제차다.

2009년 33만9000대로 전체 승용차(996만2000대)의 3.4%를 차지했던 외제차는 매년 평균 20.8%씩 늘어 2013년에는 72만4000대 비중(6.4%)이 2배에 육박했다.

외제차는 건당 수리비가 300만원으로 국산차(94만4000원)의 3.2배(2013년)에 달하고 실제 차량수리를 하지 않고 보험사에서 보험금으로 지급받는 미수선수리비도 국산차(62만원)의 3.9배 규모인 240만원이다. 전체 렌트비 중에서 외제차 비중은 2009년 19%에서 2013년 27%로 급증했다.

국산차보다 차량가격이 비싸고 수리 기간도 길어 렌트비, 수리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외제차와 사고를 낼 경우 가해차량 보험가입자는 보험료 할증부담을 져야 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보험료를 가장 많이 오르게 하는 요인'을 묻자 응답자의 34%가 외제차의 과도한 수리비라고 답했다.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60% 정도가 대물배상 금액을 2억원 이상으로 늘려 가입했을 정도다.

기승도 박사는 "경미사고가 늘고 고가 외제차가 증가하는 데다 보상시스템까지 관대해 보험금 누수가 방치돼 있다"면서 "자동차보험의 물적사고 보상제도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보험료 인하 막는 수리·렌트비 연재]
-[자동차보험료 인하 막는 수리·렌트비│(1) 치솟는 적자, 늘어나는 소비자부담] 살짝만 긁혀도 무조건 '범퍼 교체' … 줄줄 새는 보험금 2015-05-27
-[자동차보험료 인하 막는 수리·렌트비│(2) 대물배상 지급제도 개선 요구 높아] "경미한 사고 수리기준 만들어 보험금 누수 막아야" 2015-05-28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김상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