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내부문건서 '사법시험 존치' 전방위 로비 드러나
본지 회의록 전문 입수, 특정의원 당선위한 선거개입 의혹 … 언론 우호도따라 1~5점으로 평가하기도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가 2017년 폐지되는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기 위해 국회, 청와대, 정부, 헌법재판소, 언론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로비를 펼쳐온 것으로 드러났다.
8일 본지가 입수한 대한변협의 회의록 4건에 이같은 정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관악을 선거 적극 개입 통한 국회 전진기지 확보' '비노대 친노구도를 활용' '로스쿨 자녀 특혜의혹 연속적 제기' 등 논란이 일 수 있는 내용이 다수있다.
공익을 대변하는 법정단체인 대한변협이 이익단체와 같이 행동한 데 대한 비판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정의원 반드시 당선시켜야" = 대한변협이 '절대 보안·대외비'라고 명시한 2014년 5월25일 '사시존치를 위한 청년변호사그룹 회의' 문건에 따르면 선거에 적극 개입한 사실이 적혀있다. '4월, 관악을 선거 적극 개입을 통한 국회 전진기지 확보(관악을 상주)' '5월, 모 의원실과 워크샵으로 내부신뢰확보 및 사시존치 교육, 독려 → 모 의원실 보좌관 완전 장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관악을 보궐선거가 올해 4월 치러졌음을 감안하면 회의연도는 지난해가 아닌 올해를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문건 '3. 대한변협 청변특위 활동' 항목에선 '모 의원은 반드시 재선시켜야' '모 의원 지원 위한 체계' 등의 표현이 있다.
변협이 특정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 적극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에서도 그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셈이다. 해당 의원은 고시생들이 많이 있는 지역구 의원이다.
7월 20일자 문건은 '비노 VS 친노구도 : 비노 의원들로 사시존치 법안 발의'라고 적고 있다. 말미에는'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사자성어)'라고 첨언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쿨을 도입한 것과 관련, 야당 내 비노계 의원들을 분리해 목적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8월 10일자 문건의 '8월 전략' 항목은 '여당 당론화를 위해 새누리당 전체 의원 연찬 수련회에서 사시존치 PT와 의원 토론으로 당론 컨센서스 형성'이라고 적었다. 야당이 친노와 비노를 분리해 비노의원들로 법안을 발의한다면, 여당은 사시존치를 당론화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변협은 이를 위해 여야 의원과의 면담을 추진한 사실을 적었다. 8월 10일자 문건은 새누리당 실세 이 모 의원(7. 21), 새누리당 신 모 대변인(8. 7), 김 모 정책위의장(8. 7) 등의 이름이 나온다. 8월26일자 문건의 '여당전략'항목에선 '최고위원 면담을 통해 사법시험 존치 이슈를 논의해야 한다는 발언을 최고위원회에서 할 수 있도록 적극 설득' '(실세) 이 모 의원 추가면담 → VIP(대통령을 지칭하는 듯)에 반드시 전달해달라는 설득 필요'라고 적었다.
◆청와대·헌법재판소도 접촉 = 8월 26일자 문건은 '로스쿨 자녀특혜의혹의 연속적 제기로 여론의 흐름을 8. 24까지 고양시켰으며, 새정련 소통 게시판은 사법시험 존치 관련 글로 가득차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히 '법조인 572명, 새누리 김태원 의원 아들 취업특혜 정보공개 청구(8. 13)' '새정정련 윤후덕 의원 취업특혜 변호사 연서 시작(8. 14)' 이라고 적고 있다. 로스쿨 자녀 특혜의혹사건을 사시존치 여론 조성을 위해 적극 이용했음을 드러냈다.
7월 20일자 문건의 'BH(청와대를 지칭)' 항목에선 청와대 인사 접촉 사실을 명시했다. '민정수석(7. 23), 비서관(8. 5)' '현경대/김기춘(고등고시 12회, 로스쿨 법 반대의원)'/이정현'이라 쓰여 있다.
헌법소원을 앞두고 미리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만났다. '김이수 재판관(7. 13), 강일원 재판관(7. 21), 박한철 소장(예방 일정)'이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고시생들은 헌법재판소에 지난 8월 27일 사시존치를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회의록 내용대로 면담이 이루어졌다면 헌법소원을 내기도 전에 이미 대한변협 차원에서 재판관들을 두루 만나며 의견을 피력한 것이 된다.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만나기 위한 면담 추진도 7월 20일과 8월 10일 문건에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관악구의회 사시존치 결의안 조직' '관악구의회 사시존치 결의안 조직 진행상황 점검' 부분에서는 지방의회에도 손을 뻗쳤다.
국회에서 마련된 '사법시험 존치 대안 마련 세미나'에 대해서는 '관발협 참석인원 조직'이라 쓰여 있다. 관발협은 '관악지역 발전협의회'을 뜻하는 것으로 결국 토론회에는 관발협이 대절한 버스를 탄 400여명의 신림동 고시촌 임대업자와 인근 상인들이 참석했다.
법조인 출신 사회 저명인사에 대한 만남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정홍원 총리를 비롯 이재명 성남시장과 남경필 경기도 지사와의 만남 일자도 적혀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의 면담 결과도 계속 확인하는 재야 법조계와도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우호도 63%' 자체 분석도 = 회의록에는 언론사에 대한 우호도 분석 또한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40여개의 신문, 방송 매체들을 열거하고 언론 기사 게재건수와 우호도를 1점에서 5점까지 매겨 분류했다. 사시존치 관련 기사가 여론 조성에 보탬이 됐다고 여긴 언론사에 대해서는 100%라 적었다. 분석을 통해 8월 현재 63%의 언론 우호도를 획득했다고 자평하고, 75%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방송국 시사프로그램 로스쿨 음서제 보도 추진중(PD, 작가 미팅)'이라고 적고 있는데 실제로 PD수첩을 통해 로스쿨 변호사 취업 논란이 방송됐다.
로스쿨 인가 대학을 찾아다니며 캠페인을 기획하고 '충돌을 일으켜 이슈화 시킨다'는 내용도 발견된다. 의도적으로 충돌을 일으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로스쿨 출신 법조인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가 출범하자 '공격적인 기사 생산에 학계의 적극적 대응이 요망된다'며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최근 사법시험 준비생들은 사법시험 존치를 위해 이른바 '사시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발족, 성명을 발표하거나 1인시위 등을 하고 있다. 문건에는 '고시생 1천인 사법시험 존치 국회 청원'이라는 제목하에 '고시생 모임 통해 고시생 대표, 기자회견 고시생 확보'라 되어 있고, 8월 17일 국회 토론회에 있어서는 '지원 : 고시생 모임에서 후원 요청(버스 대절, 지방 교통비, 식비 등), 인원:대한법학교수회에서 학생 조직화 요망'이라 되어 있다.
고시생 모임 측에서는 문건과 관련 성명을 내고 '독자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대한변협에서 어떤 지원도 받은 바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로스쿨 비설치 법과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대한법학교수회'도 상당부분 대한변협과 행동을 같이 해왔다. 대언론활동 목차 부분에 '대한법학교수회 사시존치 기고 적극 조직(로스쿨 교수와 비교)' '사시존치 기고글 차기 회의까지 10개 확보해 준비 요망'이라 적고 있다. 지난달 있었던 법학교수 사시존치 시국선언에 관해서는 '시기를 조율하여 1주일 전에 시기를 정하면 무조건 실행가능하도록 한다'고 되어있다.
◆변협 "회장에게 보고된 것 맞다" = 대한변협 측에 문건작성 사실확인을 하자 한상훈 대변인은 "협회장 직속 TF가 구성돼 입법로비를 했다기 보다는 법조인양성제도개혁위원회에서 하는 일로 문건은 회의록에 해당한다. 내용이 회장에게 보고 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
이어 "당선 후에 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일부 이사 및 임원진 들로 구성됐다"며 "변협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조직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여야의원들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청와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들과의 접촉사실에 대해 묻자 "자세한 것은 위원회 소속이 아니라 모른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 대변인은 변협 내의 산재하는 위원회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말했지만 회의록 곳곳에는 '대외비', '절대 보안' 등의 문구가 들어있다. '보안유지는 필수. 로스쿨 집단행동 촉발은 밥그릇 프레임으로 회귀하는 것' '청년변호사그룹 대규모 조직화에 있어 반드시 보안유지 검증된 인물로 다단계식 조직 확대' 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변협 홈페이지를 보면 나와있는 변협 내 특별위원회에는 '법조인양성제도개혁위원회'라는 이름의 위원회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한변협 사무총장을 지낸 법무법인 정률의 이찬희 변호사는 "변협이 산적한 현안을 두고 사시존치에만 매몰돼있다"며 "변협이 정치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정치에 있어 엄정한 중립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법치주의의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할 변협 본연의 역할을 잊고 스스로 혼란의 수렁에 발을 담그는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