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반쪽 추도식 한국정부 뒤통수

2024-11-25 13:00:01 게재

일본, 조선인 강제노동 언급 없고 사과도 외면 … 굴욕외교 결과가 빚은 참사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노역했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24일 한국과 일본의 불협화음 속에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주최로 사실상 ‘반쪽짜리’ 추도식이 열렸다. 한국 측 불참으로 약 30개 좌석이 비어있다. 일본 사도=연합뉴스
일본정부가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사도광산 추도식이 강제성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빠지고, 일본 참석 인사의 과거 행적논란이 불거지는 등 각종 불협화음 속에서 한국정부와 관계자들이 불참한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정부 당국이 설명했던 내용과 사뭇 다른 일본의 태도는 결국 추도식 전날 불참결정으로 이어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본 외교 전반의 총체적 문제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강제징용 해법의 제3자 변제방안,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문제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이어 반쪽짜리 추도식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현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의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일본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굴욕적 대일 외교라고 비판했다. 강 원내대변인은 “그의 참석조차 윤석열 정부는 한참 늦게 확인해 추도식 하루 전날 부랴부랴 우리측 불참을 통보했다”며 “이쯤 되면 단순한 외교적 무능을 넘어 친일 매국 정부의 치밀한 계획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 대일 외교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매국 정부에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는커녕 국민 자긍심과 자존심마저 뭉개버린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이번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열기로 한국에 약속한 조치다. 애초 한국 유족과 한국 정부 관계자 등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지만, 양국은 행사 명칭과 일본 정부 참석자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여기에 일본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는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고 한국 정부는 전날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하고 자체 추모행사를 갖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일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힌 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가 달라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질 않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행사 당일 추도사에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 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면서 “종전(終戰)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제동원’ 등 강제성과 관련된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

더욱이 나카노 고 실행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된 것을 보고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큰 기쁨”이라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의 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마치 추도식이 아니라 세계유산 등재 기념 행사인냥 발언한 셈이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식이 끝난 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등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답하지 않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번 추도식을 둘러싼 우려는 일찌감치 제기됐지만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결국 외교참사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추도식 초청 대상인 한국 유가족의 참석 비용을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고 추도식 공식 명칭(사도광산 추도식)에 추모 대상이 빠지면서 이미 일본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었고 막판까지 일본 정부측 참석자를 공개하지 않을뿐더러 추도사의 내용까지 조율되지 못했던 것이 이를 방증해준다.

결국 추도식을 보이콧한 한국정부 관계자와 이날 사도섬을 찾은 한국 유족 9명은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이 있는 사도광산 옆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시찰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25일 오전 사도광산 인근 조선인 기숙사였던 ‘제4상애료’ 터에서 유족들과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별도 추도식을 개최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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