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몽골 승강기시장 절반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2015-10-15 11:41:51 게재

박호선 시그마몽골리아 사장

누가 이 드넓은 초원에 이토록 진한 향수를 뿌렸을까. 짙푸른 몽골초원은 정신이 아득해 질 만큼 허브 향으로 가득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아기'라는 이름의 풀이 뿜어내는 향기였다. 까마득히 펼쳐진 저 초원의 어디 쯤 정복자 칭기즈칸이 말을 휘몰아 달렸으리라.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정복자다. 몽골초원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러시아, 동유럽, 중동 일원까지 그의 발아래로 복속시켰다. 알렉산드로스와 시저, 나폴레옹 등 역대 영웅들이 정복한 땅을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넓은 제국을 건설했다. 다른 나라의 제왕들이 성을 쌓을 때, 칭기즈칸은 길을 뚫었다. 칭기즈칸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군대와 상인, 물자, 정보를 이동시켰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평원의 나라 몽골에서 땅 위로 난 길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몽골에서 승강기 및 에스컬레이터 사업을 하고 있는 박호선(54) 시그마 몽골리아 LLC 사장이다. 박 사장은 OEK(오티스승강기코리아) 해외 수출브랜드인 시그마 승강기를 몽골에 수입하고 있다. 몽골에 진출한 30여 개 승강기 회사 중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에르드네트 등 몽골의 주요 도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승강기 2000여 대 중 절반인 1000여 대가 박 사장이 설치한 제품이다. 몽골 정부종합청사와 울란바토르 시청사, 몽골 최고층인 37층 샹그릴라 주상복합빌딩, 선진그랜드호텔, 바양골호텔, 블루스카이호텔, 라마다호텔, 엔칸토 타운, 부다비스타, 알타이 타운 등 몽골의 굵직굵직한 건축물마다 박 사장이 들여온 한국산 시그마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들이 설치됐다. 울란바토르 남쪽 50㎞ 지점인 투아이막에 건설 중인 뉴 울란바토르국제공항(NUBIA)에도 박 사장의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고 있다. 박 사장은 한해 200여대의 승강기 와 에스컬레이터 등을 판매하면서 10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실크로드를 정복했다면, 박 사장은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로 몽골의 공중 길을 정복하고 있다. 박 사장이 울란 바토르 인근의 초원에서 말을 탄 한 소년과 사진을 찍고 있다.

박 사장은 한국동포 및 몽골인들을 위한 사회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한국벤처기업협회 해외 조직인 한민족글로벌벤처네트워크(INKE)의 몽골지부 의장과 몽골 청소년들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는 메리워드센터 세종학당 이사장을 비롯해 국립상공대학교 명예교수, 국제 울란바토르대학교 겸임교수, 한인회 자문위원 등 10여 개의 직함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울란바토르의 빈민들이 사는 게르촌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몽골 인구의 절반인 150만 명 정도는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몰려 산다. '붉은 영웅'이란 뜻의 울란바토르는 해발 1350m 몽골고원의 중부 헨티산 기슭의 톨강 가에 자리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내 한 복판에 칭기즈칸 광장이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광장 정면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종합청사 전면에는 정복자 칭기즈칸의 거대한 좌상이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광장의 한 복판에는 '몽골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담디니 수흐바타르 장군이 칼을 차고 말을 탄 채 높다란 좌대에 올라 있다. 울란바토르를 대표하는 고층빌딩들이 칭기즈칸 광장 주변으로 빙 둘러 서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울란바토르에 고층빌딩들이 제법 많이 들어섰어요. 주로 이곳 칭기즈칸 광장 주변을 중심으로 들어섰지요. 저도 거기에 일조를 했어요. 몽골 고층빌딩들에서 운행되고 있는 승강기의 절반 이상이 우리 회사 제품들이니까요."

박호선 시그마몽골리아 LLC 사장은 몽골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 사장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광장에서 정부종합청사와 블루스카이호텔, 몽골 최대 기업인 보디그룹 사옥, 골롬트 은행 본점 빌딩, 울란바토르 시청사 등 자기 회사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고층빌딩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박호선 사장을 따라 울란바토르 시내 구경을 나선 길이었다. 박 사장은 주변의 빌딩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정부종합청사, 한국인이 주인인 블루스카이호텔, 몽골 최대 기업인 보디그룹 사옥, 골롬트 은행 본점 빌딩, 울란바토르 시청사…. 이들 이외에도 칭기즈칸 광장 주변에는 새롭게 올라가는 빌딩들의 모습들이 이곳저곳 눈에 띄었다. 한마디로 울란바토르 도심은 온통 공사 중이었다. 몽골은 2016년 7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개최한다. 각국의 정상들을 비롯한 정치인, 경제인, 관광객 등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몽골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몽골에는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나 회의장, 쇼핑센터 등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몽골정부는 부랴부랴 새로운 호텔과 공항, 쇼핑센터 등 손님들을 맞이할 시설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칭기즈칸 광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몽골 최고층 빌딩인 27층짜리 샹그릴라호텔이 우뚝 솟아 있었다. 울란바토르의 최고급 호텔이자 랜드마크 빌딩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샹그릴라호텔 바로 옆으로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거대한 타워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다. 울란바토르의 새로운 랜드 마크로 자리매김을 하는 37층짜리 샹그릴라 주상복합 빌딩 건설현장이었다. 공사장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박 사장의 차를 알아보고는 차단기를 올려주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샹그릴라호텔과 새로 짓고 있는 샹그릴라 주상복합 빌딩을 각각 페이스1과 페이스2라고 부릅니다. 두 빌딩이 6층까지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이곳에 국제회의장과 명품관, 쇼핑센터, 스포츠 센터, 식당 등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셈회의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위한 주요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거지요. 페이스2의 공사는 삼성물산에서 수주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이곳에 설치되는 승강기 납품 및 설치공사를 맡아서 하고 있지요. 승강기 20대와 에스컬레이터 14대 등 총 600만 달러 규모의 공사입니다. 현재 70% 공정률을 보이고 있어요. 2016년 1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납니다."

페이스2 발치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직으로 치솟은 빌딩이 아찔하게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다. 수평의 실크로드를 정복했던 몽골 사람들이 이젠 수직으로 오르는 길의 맛을 알기 시작한 듯 했다.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실크로드를 정복했다면, 박 사장은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몽골의 공중 길을 정복하고 있었다.

동북쪽 헨티산맥에서 발원한 툴강은 울란바토르 구시가의 남쪽을 떠받치듯 휘감으면서 흐른다. 강을 건너 시가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50㎞쯤 달렸을까. 푸른 초원이 온통 파헤쳐진 채 대지의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공사현장이 나타났다. 굴삭기와 트럭 등이 흙먼지를 오가면서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대형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큼지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허허벌판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앞으로 시멘트 활주로가 하얗게 닦여져 있었다. 투아이막 지방의 NUBIA 신공항 건설현장이었다. 박 사장의 차가 신공항 청사 건설현장의 한쪽 끝에 뚝 떨어져 있는 관재탑 공사장 앞에 멈춰 섰다. 관재탑은 골조 공사를 마치고 내부 시설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박 사장과 함께 관재탑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계단을 몇 개 층이나 올랐을까. 'SIGMA' 로고가 새겨진 안전모를 쓴 직원들이 승강기 설치공사를 하고 있었다. 박 사장이 현장 직원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한 뒤 다시 계단을 오르며 설명을 해 주었다.

박호선 사장이 울란바토르 남쪽 50㎞ 지점에 들어서고 있는 NUBIA 신국제공항에서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내년 7월 열리는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를 대비해 건설되는 NUBIA 신공항에는 한국산 시그마 승강기 18대와 에스컬레이터 11대가 설치된다.


"NUBIA 신공항에 사용될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는 모두 우리 제품입니다. 승강기는 이곳 관재탑 용을 포함해 모두 18대, 에스컬레이터는 신공항청사에 11대가 설치됩니다. 내년 7월 아셈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과 귀빈들이 우리 회사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게 될 겁니다. 일하는 보람이 있고, 뿌듯하지요."

관재탑 맨 꼭대기 층에 오르자 NUBIA 신공항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게 뻗은 두 줄의 이착륙 활주로와 6대의 비행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탑승대를 갖춘 최신식 공항이었다. 수백 대의 비행기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대형 국제공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활주로 한 개와 탑승대가 단 세 개뿐이던 기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비한다면 지렁이와 용의 차이라고 할 만 했다. 더군다나 칭기즈칸 국제공항의 경우 한 개 있는 활주로마저 한 방향으로만 이착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상에 따른 결항률이 매우 높다. 당장 아셈회의를 치러야 하는 몽골로서는 국제공항 시설 확충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다행히 몽골정부는 2014년 초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자금을 지원받아 NUBIA 신공항 건설에 착수했다.

NUBIA 신국제공항에서 시그마몽골리아 직원들이 에스컬레이터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숙련된 기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관재탑 계단을 내려와 신공항 청사 현장으로 차를 되돌렸다. 신공항 청사 역시 골조가 완성된 상태에서 전기공사와 인테리어 등 내부 설비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1층 입국장과 2층 출국장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사장 앞에서 다시 'SIGMA' 로고가 새겨진 안전모를 쓴 직원들과 조우했다. 직원들은 이미 설치를 마친 에스컬레이터의 안전장치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몽골로 들어오는 관문에 한국산 제품과 기술을 심고 있었던 것이다.

울란바토르 시내 동쪽 지역인 바양주르흐구 산사르의 한적한 이면도로 변에 'LGI SIGMA'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나지막한 단층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1500㎡의 넉넉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박 사장이 본사 직원 30여명과 함께 몽골의 승강기 시장을 공략하는 본부다. 아침 8시인데도 사무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장실에서는 박 사장 주재로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박 사장이 샹그릴라 주상복합빌딩과 NUBIA 신공항 건설현장의 책임자들로부터 상황보고를 받고 있었다. 각 현장으로부터 상황보고 및 지원요청이 이어졌다. 샹그릴라 현장 30층부터 승강구 폭이 250㎜ 넓어져 이를 보강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NUBIA 신공항의 공기를 앞당기려면 추가 기술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자재 및 공구 지원을 좀 더 원활하게 해 달라, 샹그릴라 현장에 일부 물에 젖은 자재가 반입돼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박 사장이 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몽골에서 공구나 자재를 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국의 열 배 쯤 될 겁니다. 한국에서야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즉각 배달을 해줍니다. 어떤 물건이던 청계천 가면 바로 구할 수 있어요. 몽골에서는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미리미리 대비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끙끙 앓지 말고 그 즉시 투명하게 공동 테이블 위에 털어놓고 해결하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안전 우선입니다. 야간 식비와 교통비 빠트리지 말고 지급하시고요."

몽골은 한반도의 7.4배 크기의 영토를 지닌 큰 나라다. 세계2위의 석탄 및 구리 매장량을 비롯해 금, 희토류, 형석, 천연가스 등 풍부 한 천연자원을 자랑하는 세계10대 자원부국이다.

한국인의 피 속에는 몽골족 및 동이족 등 유목민의 DNA가 들어있다. 한 평생 살면서 한국인들처럼 자주 이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술자리조차 한 자리에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1차, 2차, 3차로 이동하면서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도 유목민과 기마민족의 유전자에서 비롯된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목민 피를 이어받은 한국인들이라 하더라도 박 사장만큼 자주 이사를 다니고 뻔질나게 직장과 직업을 바꾼 사람은 드물다. 박 사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빠지면서 피혁공장 공돌이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15살 때 홀로 집을 뛰쳐나와 주간지 가판과 쥐포 땅콩 등을 파는 리어카 행상, 포장마차, 신문 우유배달 등 온갖 궂은일을 했다. 출판사 책 배달과 수금, 건설현장 노동자, 쥐와 바퀴 벌레를 잡는 방영회사의 기사, 식품회사 영업사원, 전자부품회사 자재구매와 납품업무, 봉제공장, 택시기사 등 20여 가지의 직업을 전전했다. 직접 인테리어 회사를 차려 사장 노릇도 해 보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을 모시는 수행 비서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제 몽골로 삶의 무대를 옮겨 승강기 사업을 하고 있다. 박 사장 피 속의 유목민 DNA가 그를 다시 몽골초원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지금 박 사장은 또 새로운 풀밭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건축 장식재 사업과 인텔리전스빌딩시스템(IBS) 관련 사업 등이 그가 새롭게 진출하고자 하는 영역이다. 박호선 사장은 영락없는 21세기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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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