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의료계에 보내는 메시지

"환자에게 건강 줄 수 있다면, 양한방 협진이 왜 문제되나"

2015-12-22 11:23:39 게재

중의가 MRI 사용, 감염병도 치료 … 한의는 연구목적 의료기 사용도 시비

중국, 상호보완적 중서의 협력 … 한국, 환자 권익보다 의료계 요구 우선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서의학과 중의학 중 무엇을 우선시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보완해 환자에게 건강한 삶을 줄 수 있다면 협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경 수도의과대학 부속 중의병원 왕티엔 국제교류센터 주임 교수의 말이다.

최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하려던 보건복지부의 정책이 '올스톱' 됐다. 애초 정부는 2013년 12월 "한의사 의료기기사용을 허용하라"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결정에 따라 올해 안에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가 9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도 복지부는 아무런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들은 "여러 의료현안들과 맞물러 논의가 더뎌지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법적 행정적으로 인정하는 정책은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서비스 질과 직결된다. 그런 만큼 보건의료 국가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중국 중의과학원 부속 서원병원의 임상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한의사협회 제공


이와 관련 최근 '상호보완적 중서의(中西醫) 이원화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의료 현장을 탐방했다. 중국 의료체계는 '한의사 의료기 사용'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중국 보건당국이 중의사 의료기 사용 적극 앞장 서 = 18일 오전 10시(중국 시간) 방문한 중국 베이징 수도의대 부속 중의병원. 병원 입구에 위치한 응급실. 내과·정신과·피부과·외과 등 진료병동을 비롯해 외래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여느 우리나라 대학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이 병원에는 1400여명의 의료종사자들이 하루 1만20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베이징시 보건당국으로부터 암(腫瘤)전문병원으로 인정받았다. 이 병원의 중의들은 컴퓨터 단층촬영기기(CT)나 자기공명영상기기(MRI)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왕티엔 주임교수에 따르면, 진료과목에 따라 서의와 중의학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등 체계적인 진료 스케줄을 정하고 있다. 응급환자인 경우, 서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한 뒤 중의사의 침술 또는 중의약으로 치료한다. 피부과나 내과, 신경과의 경우는 중의학의 시술이 우선되기도 한다.

왕 주임교수는 병원의 임상연구활동을 소개하면서 "환자의 예후를 전과 후를 비교한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피부과와 신경과 등에서 서의학보다 중의학이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특히 우피선(건선)의 경우는 중의학으로 완치되는 환자가 70~80%에 이른다"고 밝혔다. 신경과 등에서는 "뇌경색이나 치매 등도 중의학 치료가 효능이 더 좋다"고 말했다.

북경 수도의대 부속 중의병원에서 80세 뇌졸중환자가 중의사에게 침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한의사협회

중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얻은 연구성과가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도 건국초기 서의사들이 다수를 차지한 일부 병원에서는 중의사의 의료기 사용을 제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보건당국이 직접 각 병원마다 중의가 자유롭게 의료기를 사용할 수 있게 강제했고, 현재는 누구도 이것을 문제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중의사 의료기기 사용하면서 연구성과 과학화 촉진 = 중국의 인민헌법에는 국가가 중의학을 육성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또 위생부 중의약관리국 예산은 우리 돈으로 1조 3634억원 규모이다. 중의과학원에는 연구원 6000명, 산하병원 6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 예산 220억원, 한의약연구원 143명, 산하 병원이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중국 중의과학원 부속 서원병원의 약제실. 전산화에 따라 약제가 자동으로 출시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의과학원 부속병원인 서원병원을 방문했다. 중의과학원은 최근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 교수를 배출한 곳이다. 서원병원은 특히 감염병에 대한 치료 및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자오란차이 전염병센터 주임 교수는 사스와 에볼라, 조류독감, 댕기열, 수족구병 등에 대한 중의학 임상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중서의 협진으로 처방될 경우 서의 단독 치료보다 효과가 좋았다"고 밝혔다.

병원측은 사스가 국가적 재난이 됐을 당시, 치료에 중의계가 참여하면서 "양약의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였다"고 자부했다. 자오 교수는 댕기열도 서의학으로만 치료했을 경우 완치율이 50%인 반면, 중의학과 협진을 통했을 때는 무려 81.7%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또한 댕기열 증상 중 가장 치명적인 고열에 대해서는 서의 단독일 경우 61.65시간이 소요됐지만 중·서의 협진시 25시간내에 가능했다고 했다. 이런 결과는 국제저널에도 게재됐다. 최근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를 중의학으로 정복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중의들을 파견해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들은 "최근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투유유 박사가 '아르테미시닌은 중의약이 세계 인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에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중국정부는 최근 더욱 중의약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에는 300병상 이상(우리나라 종합병원) 규모의 병원에만 '중의약 진료부'를 두도록 강제했는데, 최근 100병상 이상으로 그 기준을 낮췄다.

지금 중국의 의료환경은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중 보건당국의 전통의학에 대한 입장과 정책적 추진력의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중의사는 MRI 등 임상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임상진료 연구성과와 자료들을 토대로 중의학의 치료효과를 '현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박은성 베이징전통의학연구소 소장은 "연구목적용 의료기 사용조차 시비거는 상황에서, 정부가 우리나라를 의료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중국의 의료체계를 살피고 무엇이 국민 건강을 위한 길인지 새겨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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