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하도급대금 '직불제' 추진 갈등

"공사관리 어렵고 임금체불 악화될수도"

2016-04-12 10:32:19 게재

종합건설업계·건설노조, 반발 … "직불제 하려면 근로자·장비업자도 함께"

건설업계가 '하도급 대금 직불제' 문제로 술렁이고 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16조원 규모의 공공발주 공사에 대해 직불제를 추진하겠고 발표하자 전문건설업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종합건설업체와 건설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소규모 복합공사' 문제로 진통을 겪은 건설업계가 또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하도급 대금 지급실태 및 직불제 필요성,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올해 추진되는 15조9469억원 규모의 공공공사에 대해 '하도급 대금 직불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제한적으로 추진됐던 하도급 대금 직불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17개 광역지자체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20개 공공기관이 참여했고, 규모가 공공부문 전체 발주(34조2485억원)의 47%에 해당한다.

 

 


나아가 공정위는 이번 달 안에 하도금 직불을 촉진할 수 있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발주 규모가 큰 LH, 한국도로공사 등은 상반기 중 '대금직불시스템'을 도입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문건설업계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중소 전문건설업체에게 도움을 주는 희소식"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종합건설업계와 건설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폐지해야 할 직불제 확대가 웬 말"이냐며 비난했고, 전국건설노동조합도 "건설노동자 생계파탄 외면한 하도급 대금 직불은 '어불성설'"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헛다리 짚고 있다"= 하도급 대금 직불제는 공사 ·장비·임금·자재 대금이 원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공공 발주자로부터 하도급 업체에게 직접 지급되는 제도를 말한다. 원청업체의 불공정한 하도급 대금 지급행위로부터 하수급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하도급 대금 직불제는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가 하도급 업체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유발하는 불공정 사례이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2015년) 전체 하도급법 위반 행위(5834건) 중 61%(3567건)가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펼쳐졌다. 하도급대금 지급확인제도, 하도급대금지급보장제도, 대금직불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공정위가 '전면 직불 추진'이라는 칼을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종합건설업계에서는 공정위 방침이 '타깃'을 잘못 설정했다고 비판했다. 하도급 대금 문제 대부분이 민간발주 공사에서 발생하는데, 정책은 공공발주 공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현재 공공발주 공사의 경우, 원청업자는 하도급 업체에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를 발급해야 하고, 발주처는 이를 확인한 뒤 공사를 발주하도록 돼 있다. 하청업체가 하도급 대금을 떼이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반면, 민간발주 공사에서는 공공공사처럼 지급보증서 발급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공공 공사에 비해 하도급 대금을 떼이거나, 늦게 지급받는 경우가 많다는 게 종합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조준현 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하도급 대금 미지급 문제가 주로 발생하는 민간발주 공사가 전체 공사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공사를 대상으로 직불을 전면 도입하는 것은 헛다리를 짚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최무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장은 "하도급 대금 직불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추가 비용이 필요한데, 민간에 이를 강요하기 쉽지 않다"며 "우선 공공성이 강한 공기업과 지자체 발주공사를 대상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도급자의 하도급 업체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현실적 문제도 제기된다. 통상 발주처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은 원도급업체는 '수령후 15일 이내'에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면 된다. 15일 한도 내에서 대금지급 시기를 통해 하도급업체를 관리하던 수단이 직불제가 도입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보통 자금사정이 어려운 하청업체 입장에서 대금지급을 당기거나 늦추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며 "대금이 하청업체에 직접 내려가면 하청업체 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금체불, 대부분 하청업체에서 발생 = 반면, 건설노조는 또다른 측면에서 하도급 대금 직불을 반대하고 있다. 직불제가 확대될 경우, 임금노동자 및 건설기계장비업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도급 대금 직불 후, 하도급자가 근로자 임금과 장비대여금을 지불하지 않고 부도가 나거나 잠적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실제 이를 입증하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포스코건설 하청사로 포항~울산간 고속도로공사에 참여했던 청운산업개발이 25대의 덤프트럭 임대료 700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사라져 현재 덤프 운전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충북 진천에서 일하던 스카이크레인 노동자들도 하청 건설사가 하도급대금을 지급받은 후 도주하는 바람에 132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아직 받지 못한 상태다.

서울시가 도시기반시설본부 공사현장의 임금 및 자재·장비대금 체불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2012년) 2010~2011년까지 186건, 23억500만원 중 하도급업체에서 발생한 것이 161건(87%), 18억5400만원(80%)에 달했다. 원청업체에서 발생한 것은 25건(13%), 4억5100만원(20%)에 불과했다.

건설기계대여금 체납도 대부분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2010~2014년까지 발생한 체납 1541건, 261억3300만원 중 하도급자 체납이 1196건(78%), 226억2700만원(87%)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공정위가 하청사 입장만 볼 게 아니라 건설노동자들의 애환을 살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체불문제는 산재문제와 함께 노조원들의 가장 큰 민원"이라며 "공정위가 임금 체불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직불제를 강행한다면 전력을 다해 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협도 하도급업자에 대한 대금 직불을 추진하려면 공사에 직접 참여하는 2차 협력자(근로자, 자재업자, 장비업자)까지 직불을 확대하거나, 혹은 원청업자가 2차 협력자에게 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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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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