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수소폭탄 만들기
수소폭탄, 더이상 파괴수단이 아니라고?
1월 6일 북한은 4차 핵실험에 이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몇차례의 핵실험이 있었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수소폭탄'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정부 뿐 아니라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표를 부정했지만, 이제 '수소폭탄'은 현실적 공포로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핵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가 쓴 '수소폭탄 만들기-20세기를 지배한 어둠의 태양(Dark Sun; The Making of the Hydrogen Bomb)'은 바로 수소폭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이자 안내서이다.
'수소폭탄…'은 20세기 초 원자폭탄이 탄생하고 그것이 일본에 투하된 과정을 소설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그려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원자폭탄 만들기'(전2권)의 후속작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도 원자폭탄의 투하로 태평양전쟁이 종식된 후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다.
리처드 로즈는 어떤 과학자에게는 희망이었고, 어떤 정치인에게는 유일하게 애국적인 무기였던 수소폭탄의 개발사를 한편의 스릴러물처럼 긴박감 있게 그려낸다.
원자폭탄 투하, 새로운 전쟁의 시작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2발의 '리틀 보이; 당시 투하된 원자폭탄의 이름)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지만, 이것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함께 맞선 동맹국이었지만, 미국은 소련이 상당한 군사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장래에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소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은 원자폭탄이라는 우월적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미국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아니 1947년 냉전이 개시되었을 때 미국은 사용가능한 원자폭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소련의 간첩들은 원자폭탄이 개발되기 전부터 이에 대한 정보를 소련에 넘겼고 모스코바의 해외첩보 사령부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원자폭탄에 대한 상세한 계획서를 작성해 국가 보안인민위원에게 올린다. 2차 세계대전은 종식됐지만 본격적인 핵무기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소폭탄은 전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정치 과학 군사적 사안의 충돌과 융합의 산물이었다. 매파 정치인들과 군인들은 '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전쟁계획을 짰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군비경쟁을 벌인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원리를 발견하겠다는 욕심에 수소폭탄 개발에 뛰어들었다. 물론 약간의 애국심과 공포도 양념처럼 새로운 폭탄 개발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폭탄은 실제 쓰이지도 못했다. 군인과 정치인과 과학자들은 쓰지도 못할 무기를 만들다가 냉전의 종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수소폭탄 개발의 대가는 혹독했다. 물론 수소폭탄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미국과 소련은 군비경쟁 속에 다시는 회복하기 힘든 내상을 입는다. 미국은 군비경쟁으로 4억 달러의 비용을 날렸고, 소련은 경제위기 끝에 붕괴하고 말았다. 미국도 달러를 맘대로 찍어내는 발권국가가 아니었다면 소련 꼴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 로즈는 '수소폭탄…' 전편을 통해 왜 이런 '어리석음의 비축'과 '공포의 균형'이 생겨나게 됐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는 현대 물리학의 거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에드워드 텔러, 이고리 쿠르차코프, 안드레이 사하로프로부터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해리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 등이 고뇌와 고민, 공포와 광기, 이데올로기와 지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쓰이지도 못할 무기 만들다 냉전종식
수소폭탄 개발 경쟁은 TNT 50메가톤급의 차르 붐바(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은 15 킬로톤에 불과하다)를 개발하는 데 이르렀지만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일부 국가의 내전이나 국지전 외의 전쟁도 소멸했다. 리처드 로즈는 "핵무기는 국가 주권을 제한해 국제사회의 폭력을 줄이는 바로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주권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공포의 균형' 틈새로 핵기술은 확산됐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을 계기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스멀스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힐러리 클린턴의 측근인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를 만나 자신의 소신인 '핵무장론'을 펼치다 망신을 당했지만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리처드 로드는 이 책을 마무리 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긴다. "핵무기가 조만간 전 세계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과 용도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파괴수단으로서 이미 오래 전에 그 용도를 상실했다." 과연 그럴까. 리처드 로즈의 예언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맞서는 상대 손에 쥐여진 칼은 그 칼의 날카로움으로 인해 싸움이 확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날카로움에 의해 공멸할 수도 있다. 한반도에도 지구상에도 더 이상 수소폭탄 같은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