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구조조정업무 법적 잣대는

"금융기관 대출 조정·중재, 일반적 직무"

2016-10-19 11:14:14 게재

서울중앙지법, 김진수 전 부원장보 '무죄' 선고 … "최근 구조조정 부진 영향 미친 듯"

법원이 경남기업의 특혜지원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혐의로 기소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업무와 관련해 법원이 내린 첫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심담 부장판사)는 18일 김 전 부원장보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 금융기관의 대출을 조정·중재하는 것은 (금감원 기업금융개선국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구조조정은 다수의 이해관계자간 협의와 조정을 통해 진행되는 것으로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상충이 불가피하다"며 "부실징후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은 금융감독원의 고유한 업무 범위 내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채권금융기관들과 해당기업 사이의 의견대립이 첨예해 구조조정이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거나 중단되는 경우 해당기업의 도산과 그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화, 협력업체의 연쇄도산 및 개인투자자의 피해 등을 야기, 종국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신용질서를 저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법원은 김 전 부원장보가 2013년과 2014년 기업금융개선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원활한 기업구조조정의 진행을 위해 채권은행과 차주사의 입장 차이를 조정·중재하고 다른 채권은행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은 일반적 직무권한 범위 내의 일이라고 판단했다.

"농협에 여신심사자료 요구, 정당" = 김 전 부원장보는 경남기업에 대한 △농협의 대출 종용 △신한은행에 대한 채무재조정안(무상감자)·부의안건 재검토요구 △우리은행에 채권단 안건 동의 압박 등의 직권남용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 전 부원장보가 농협에 여신심사자료를 요구한 것이 경남기업에 대한 대출을 성사시키기 위한 목적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남기업에 대한 여신지원의 조정·중재과정에서 농협의 여신심사절차가 내규와 달리 이뤄졌다는 의혹을 갖고 위규사항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직무행위였다"고 판단했다.

10년치 여신심사자료를 요구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보와 갈등상황에 있었던 농협담당자들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한 진술만으로는 10년치의 자료제출을 요구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은 1년치의 자료요구만 인정했다.

김 전 부원장보가 경남기업에 대한 농협의 170억원 대출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여신지원에 관한 조정·중재'였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당시 경남기업을 둘러싼 국내 경제 상황을 판단에 고려했다.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이 개시됐고 STX그룹의 구조조정도 시작된 상황에서 경남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1500여개의 연쇄도산과 채권금융기관의 부실화, 건설업체에 대한 여신축소로 인한 다른 건설업계의 유동성 부족 등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했다.

'대주주 무상감자 삭제 지시' 인정 안해 = 김 전 부원장이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신한은행과 회계법인에 압력을 넣어 무상감자안을 삭제하게 했다는 혐의도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금감원 실무 직원이) 자신의 사견임을 밝히면서 신한은행 심사역에게 '(경남기업)대주주의 지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선에서 다시 검토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등의 말을 하고 실제로 심사역이 채무재조정안을 검토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금감원 팀장이 김 전 부원장보에게 채무재조정안을 보고했으나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고 진술하고 신한은행의 부장도 무상감자 등의 수준이 김 전 부원장보가 생각하는 수준에 비해 높아 우려했지만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팀장과 직원, 신한은행의 부장과 심사역의 진술을 토대로 무상감자 삭제 등에 대한 김 전 부원장보의 지시는 없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인사청탁은 상당한 개연성 존재" = 법원이 김 전 부원장의 직권남용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개연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보가 직접 작성한 자신의 이력서 파일이 경남기업 비서실 직원의 컴퓨터에서 발견됐고 성 회장이 청와대 국정홍보수석비서관을 만나 승진을 부탁하고 이력서를 이메일로 송부했다"며 "청와대 비서관이 당시 최수현 금감원장에게 전화해 성 회장에게 들은 얘기를 전하면서 '김 전 부원장을 챙겨봐 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던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력서 하단에 '현재 최고참 국장급으로 2008년 6월 함께 실장 승진된 다수가 이미 부원장보 승진'이라는 기재가 있었던 사실도 인정된다"며 "이를 종합해 보면 김 전 부원장보가 성 회장에게 자신의 승진에 관한 청탁을 했을 상당한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농협이 경남기업에 대한 170억원의 대출을 하자 그 이후 더 이상 여신심사자료의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던 사정을 보면 경남기업에 대한 여신지원을 압박할 목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면서도 "농협의 여신심사절차가 내규와 달리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정당한 직무행위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최근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고 한진해운의 물류사태가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준 사실 등이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계에서 한창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에서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으려고 하면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업무를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인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1심 판결문을 분석 중이며 항소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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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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