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새 배출가스 인증제도 9월 도입

자동차업체 봐주기 규제, EU와 대조

2017-02-16 11:11:50 게재

EU, 연비·배출가스 측정 실제 주행 반영

한국은 배출가스만, 유예기간도 2배 길어

구식 차량 재고정리 시간까지 벌어줘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새로운 연비·배출가스 규정인 유로6c(EURO6c) 제도를 9월부터 도입한다. 대기환경 보호와 고효율·저탄소 차량 판매 촉진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은 EU의 새 제도 중 디젤차량 배출가스 규정만 도입하고, 연비는 기존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반쪽짜리 규제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EU의 유예기간은 1년이지만 한국은 2년이다. 세계적인 추세를 무시하고 기업 봐주기식 규제라는 비판이 거세다.

PSA그룹이 프랑스의 실제도로에서 연비를 측정하고 있다. 자동차 뒷 부분에 달린 것이 이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 등 유해물질을 측정하는 장치(PEMS)다. 사진 PSA 제공

EU, '뻥연비' 논란 원천 차단 = EU집행위원회는 9월부터 EU 전역에서 신차가 출시될 경우 실제 도로를 주행하면서 측정한 연비와 배출가스를 적용한다. 기존 연비와 배출가스는 실험실 등 제한된 지역에서 측정한 값이라 실제 도로를 주행했을때와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디젤차 질소산화물(NOx) 기준(㎞당)은 2000년(유로3) 0.5g에서 2014년(유로6)에서 0.08g로 6배 이상 강화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제 도로주행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1.0g에서 0.6g로 40% 줄어드는데 그쳤다. 기준치는 0.08g인데 실제 배출량은 7배가 넘는 것이다. 디젤승용차가 늘어나면서 도심지역 질소산화물 농도가 개선되지 않는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동차 제조사들은 EU 집행위원회에 새로운 규제 도입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비롯해 자동차업계의 연비와 배출가스 오류가 심각하다는 각종 조사 결과가 나오자 EU집행위원회는 업계 요청을 거부했다.


EU는 지난 20여년간 유럽연비기준인 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 방식으로 연비를 측정해왔다. 이 연비를 믿고 차를 산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업체가 밝힌 표시연비와 실제 연비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뻥연비' 논란은 비현실적 연비측정이 원인이었다.

UN은 2014년 새 연비 규정WLTP(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s Test procedure)를 발표했다. 기존 연비 측정 방식이 자동차 산업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측정시간이나 측정거리도 늘어날 뿐 아니라 최고속도 역시 종전 시속 120㎞에서 131㎞로 높아진다. 가속구간이 많아짐에 따라 연비는 낮아지고 배출가스는 늘어나는 구조다. EU는 WLTP를 새 연비제도에 도입한다.

이와 함께 PEMS(Porable Emission Measerement System)라는 측정장치를 차량 뒷부분에 달고 운행하면서 이산화탄소(CO2)나 질소산화물(NOx) 등 유해물질 배출량을 측정한다. 실험실이 아닌 실제 도로 주행에서 측정한다. 이미 EU집행위원회는 고속도로와 도심도로, 교외도로 등에 적용한 기준을 제시했다.

자동차제조사들이 밝혀온 연비와 배출가스 발표치와 실제 도로 주행시와 오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업체가 환경단체 등과 실제 도로 연비를 측정한 결과 두자릿수 이상 오차가 드러났다. 이러한 기준이 도입되면 폭스바겐처럼 제조사가 규제 당국과 소비자를 속이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푸조, 실제 측정 연비 공개 = 한국에서는 새로운 규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지만 유럽은 사정이 다르다. 일부업체는 규제 변화와 소비자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 판매중인 차량의 실제 도로주행 연비를 공개 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이다. PSA은 지난해 7월 주요 모델 30종을 대상으로 실제 도로상에서의 연비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환경단체인 T&E, 프랑스자연환경(FNE) 등과 공동으로 실시했고, 각종 데이터 심사는 인증기관인 프랑스 뷰로베리타스가 맡았다.

공신력있는 환경단체, 인증기관과 실제 도로 연비를 측정하고 공개한 것은 PSA가 최초다.

PSA는 시속 0~60㎞로 달리는 도심(25㎞)과 60~90㎞ 국도(39㎞), 90㎞ 이상 주행하는 고속도로(31㎞)를 달렸다. 운전자와 어린이 1명이 동승, 화물 수납, 에어컨 사용 등의 실제 운전자의 주행 환경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와 함께 PEMS를 장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측정했다.

PSA의 실제 측정결과 그동안 알려진 표시연비와 실제 도로주행 연비는 상당한 오차가 있었다.

'3008 1.2 Puretech 130' 차량 표시연비는 리터당 25.0㎞(한국기준으로 환산)였지만 실제 도로주행 연비는 15.87㎞로 36% 효율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적은 오차는 25% 가량 됐다. 표시연비보다 효율이 좋게 나온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PSA는 디젤엔진 분야에서 앞서 있는 업체로 다른 자동차업체의 실험실 측정치와 실제 연비 차이는 더 클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국은 반쪽짜리 규제 논란 = 앞서 있는 국가들은 강력한 규제를 내놓고 업체들은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한국은 반쪽 짜리 규제를 들여오는데다 재고처리 기간도 여유있게 준다.

한국의 자동차 관련 규정은 미국과 유럽 방식을 혼합 사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비와 가솔린차 규제는 미국 방식을 따르고 있다. 디젤차의 배출가스 규제는 EU 규정을 따라 쓰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연비와 가솔린차량 환경규제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디젤차 배출가스 규제만 강화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유예기간이 EU보다 길다는 것도 문제다.

EU는 새로운 제도 도입 이전에 제작된 차량에 대해서 2018년 9월 1일 이전까지만 판매를 허용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1년이 긴 2019년 9월 1일까지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자동차업체들이 구식 차량 재고 정리를 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수출 차량에만 새 규제가 적용되고 한국에는 반쪽 규제만 적용되면 한국 소비자만 골탕 먹게 된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춰진 차량은 수출되고 그렇지 않은 차량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세계 각국의 자동차업체가 새 제도에 적응하는데 한국 업체들은 정부 봐주기에만 의존하면서 국제적인 경쟁력이 줄어들게 된다"며 "디젤 차량은 물론 가솔린 차량에 대해서도 실제 도로 주행 연비와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차량의 대기오염 방지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매번 자동차업계 로비에 좌절된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단적인 예다.

일본도 2018년부터 자동차 연비 표시 방식을 자체 기준인 'JC08' 모드에서 WLTP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연비나 배출가스 규제가 강하지만 실제 도로 주행이나 자동차 사양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JC08 모드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평지를 달리는 등 조건이 있다. 일본도 논란이 많았지만 지난해 미쓰비시 등 일부 업체의 연비가 과장된 것을 국토교통성이 적발하면서 연비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EU 규제는 2020년에는 더 강화된다. 실제 도로 주행시 배출가스가 인증 모드 기준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안심할 동안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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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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