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구름보다 무거운 말
"촛불들로 증폭된 광장의 포효"
#"네댓 살 아이가 촛불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 발갛게 상기되어 온몸으로 솟구칩니다./ 아이가 퍼뜨리는 저 숨결로 깃발들은 으르렁거리고/ 광장도 이리 들썩 저리 들썩 뜨겁게 달궈집니다./ 당당한 촛불들로 증폭된 광장의 포효는/ 삶과 죽음의 안타까운 경계마저 허뭅니다./ 노란 분루 머금고 삼백넷 영령도 합류합니다./ 독재자가 암살한 통곡의 목숨들도 한 뜻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꺼번에 벅찬 분노 내지릅니다./ 이제껏 이 땅에 이런 주권 없었습니다./ 평화를 밝히고 광장을 나눠준 촛불은/ 사람들 가슴에 들어가 불타는 양심이 되었습니다./ 무리가 되어 일렁거리는 노도의 촛불은/ 평생토록 꺼지지 않을 민주가 되었습니다./ 모멸과 굴종을 벗고 뜨거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부패한 반민주가 항복의 백기 꺼내듭니다./ 끈질긴 독선과 불통이 마침내 거꾸러집니다." (정우영 시인의 '통쾌한 민주주의가 유유히' 중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의 등이 두꺼비를 닮았다// 손을 대기만 하면 내가 먼저 움찔할 것 같다// 열정만으로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다고// 그의 몸 여기저기 남아 있는 흉터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 떠나는 선배나 남아 있는 기계나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누구라 해도 전해줄 노하우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인지 모른다" (표성배 시인의 '희망퇴직을 앞둔 선배가 쓰던 기계를 물려받으며' 전문)
평등, 평화, 행동하는 작가들의 모임 '리얼리스트 100'이 '구름보다 무거운 말'이라는 시집을 펴냈다. 리얼리스트 100은 2008년 출범 이래 폭력과 소외, 적자생존의 경쟁을 일상화하는 자본주의를 반대하며 인간 존엄이 회복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시를 실은 42명의 시인과 작가들은 현장 중심의 실천을 통해 반자본주의적 문화, 문학 운동의 토대를 만들려는 이들로 진보적 가치를 담은 작품의 생산과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구름보다 무거운 말'은 리얼리스트 100이 처음 묶는 공동작품집이다.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 문단의 리얼리즘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진보 문학, 노동 문학의 문제적 시인과 작가들이 망라돼 있고 이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문학의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
특히 이 책에 담긴 시들은 리얼리즘 시의 전형성을 뛰어넘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용산 참사, 세월호 침몰, 촛불집회 등 굵직굵직한 역사의 현장에 대한 리얼리스트 100의 날카로운 시선도 만날 수 있다. 이민호 시인은 발문에서 "이 시선집을 꾸민 동력은 신념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