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노후보장 대안 될 수 있을까

2017-03-23 10:38:28 게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득보장 방안으로 부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앞당겨진 19대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기본소득'이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심상정 등 여러 후보가 핵심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소득불평등과 빈곤 문제의 해법으로 주목받는 기본소득은 우리나라의 불안한 노후보장체계에 대해서도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국가나 정치공동체가 아무런 조건 없이 부여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은 빈곤에 대한 사회부조도 아니고 일자리가 없어서 받는 실업수당도 아니다.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보편적으로 또 무조건적으로 개개인에게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존 현금 복지제도와는 분명 다르다.

이상적인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던 기본소득이 정책적 관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였다.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회적 빈곤의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 바 있고,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맥거번 후보와 공화당 닉슨 후보는 각각 기본소득과 유사한 '시민보조금'과 '마이너스 소득세'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닉슨 대통령이 조기 사임하면서 시행되지 못했다.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다. 경제성장이 더 이상 충분한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고 심각한 소득불균형을 초래할 뿐이며 완전고용을 추가하는 기존 복지국가 전략은 가능하지 않게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본소득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원론적인 의미의 기본소득은 노인 뿐 아니라 전 연령층의 빈곤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얼마나 현실가능성이 있느냐다. 단순 계산해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매월 100만원씩 기본소득을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비용이 600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 정부 총수입보다도 200조원 이상 많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걷고 기존 복지제도는 전면적으로 축소 내지 폐지하지 않으면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다.

기획재정부 예산라인 고위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다수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족한 복지현실과 재정여건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실제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기본소득도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소득을 앞장서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걷는 세금 15조5000억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연간 30만원을 지급하고, 아동·청년·노인 등 만 30살 미만과 만 65살 이상 연령대에 생애주기별로 연 100만원, 농어민과 장애인에게 1인당 연 100만원의 특수배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매월 국민 1인당 적게는 2만5000원에서 많게는 20만원 정도의 소득이 주어지는 셈인데 기본생활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그런데도 연간 43조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

차라리 이 돈으로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게 더 실효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인 기초연금도 일종의 부분적 기본소득에 해당된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매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급대상은 소득 하위 70%로 축소됐고, 국민연금 등과 연계해 지급액도 줄었다. 당장 시급한 과제인 노인빈곤을 해소하고 불안한 노후보장체계를 보완하기 위해선 기본소득보다 기초연금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 홍원표 정책국장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수준에서 유지하고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강화한다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50% 수준까지 올라 어느 정도 노후생활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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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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