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자체 관광정책 체질을 바꾸자
홍성고을 원님 집터를 관광객 숙소로
지역특색 강한 자원 발굴해 관광산업화
주민·마을공동체 상생하는 시도 잇달아
# '농촌창업'에 매력을 느껴 관광업에 뛰어든 20대 젊은이들. 학창시절을 보냈던 대학과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100년 넘은 고을 원님 집터를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개별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 눈높이에 맞는 코스를 개발, 여행사도 시작한다. 충남 홍성의 '행복한 여행나눔'은 주민들 삶이 녹아있는 여행상품을 통해 마을이 젊은이들로 들썩거리게 만들고 농촌체험마을들을 연결하는 기착지가 되겠다는 포부로 가득하다.
# 서울에 흔한 성형외과 대신 척추 관절 여성 등 특수병원이 일찌감치 자리잡은 강서구. 인천·김포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는 점을 활용해 의료관광에 눈을 돌렸다. 성형·미용시술에 비해 치료기간이 길다는 점에 착안,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간병보조인으로 양성해 낯선 이국땅에서 장시간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문화 여성들은 한국사회에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회복기 외국인들은 지역관광에 한차례 더 지갑을 연다.
대형 관광버스나 여행사 깃발을 앞세운 단체는 아니지만 소규모 관광객을 유치해 실속을 꾀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지역 내 숨은 자원을 찾아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그 결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형태다.
◆창업 직후부터 적자 없는 게스트하우스 = "처음 1년은 적자를 각오했어요.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지금껏 적자난 적이 없을 정도로 반응이 좋습니다."
'행복한 여행나눔' 여행사와 암행어사 게스트하우스는 김영준 대표를 포함해 4명이 운영하고 있다. 충남 홍성읍에 있는 청운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선후배들로 창업동아리 '투어플라이'에서 토대를 닦은 뒤 지난해 7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기 고양시 등 수도권 출신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홍성에 남는다고 했을 때 반대도 많았다. 충남교육청 인증 농촌체험학습장인 문당마을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용기가 됐다. 김 대표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홍성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젊은 청춘들 발길이 잦은 인근 보령이나 태안처럼 자신들이 홍성에 젊은이들을 끌어들이자고 마음을 모았다. 6개월간 함께 여행을 하며 게스트하우스 공부를 하고 홍성시내를 샅샅이 훑어 '암행어사' 집터를 찾아냈다. 100년 된 한옥으로 오랜 세월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는 중심 역할을 했던 이 공간은 남당항 대하축제나 홍주성 천년여행길을 걷는 관광객은 물론 이국적인 숙소나 영화촬영지를 찾는 20대 젊은이와 가족들에 인기다. 홍성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 가까이 2호점도 구상 중이다.
이미 알려진 관광상품에 더해 홍성의 숨은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도록 '먹방투어' '내포 액션여행' '홍성로맨스' '독립운동가의 길' 등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홍성군이 합세해 지역관광을 활성화할 10여개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암행어사 상징인 마패를 들고 다니면서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농촌체험마을에서 묵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홍성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연령대 주민들이 지역색을 살린 관광사업으로 활력을 더하고 있다. 전북 김제에 사는 공예가들은 농부들이 낟알을 담았던 투박한 쌀자루를 재활용해 너른 김제평야를 떠올릴 기념품 '자루'를 만들어냈다. 마을 주민들이 쌀자루를 모아 씻으면 공예가들 기술을 전수받은 농가의 다문화 여성들이 제품을 생산하는 형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에서 학창시절 카누를 탔던 이들은 수상안전교육원을 꾸려 아름다운 물길을 즐길 수 있는 카누체험장을 운영 중이다. 카누선수 출신 '동동카누' 운영진은 펜션과 농촌체험장 등 기존 관광시설과 협력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로 사업을 안착시켰다.
경기도 가평산 농산물을 활용한 '이일유 발효여행', 전남 구례로 은퇴한 예술인들이 주민과 관광객에 작업실을 개방하는 '구례 예술인마을 토요오픈스튜디오', 전남 여수의 다문화여성들이 차리는 감성밥상 '수-레인보우협동조합' 등도 관광을 매개로 지역사회가 소통·상생하는 사례다.
◆쌀자루·수상안전교육도 여행상품 = 공정여행사들도 국내여행 문화를 바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단순한 맛집이나 볼거리로 지나치고 마는 1회성 국내여행을 지역 특색을 인지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국내 공정여행 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근대문화를 상징하는 건물과 사람을 만나는 '대전 대흥동 여행', 과거와 현재가 조화로운 '전주 여행', 느림이 아름다운 '청산도 슬로우시티' 등이다. 서울 은평구와 노원구 등도 산새마을이나 백사마을 등 평범한 주민들이 사는 동네에 관광이라는 옷을 입히고 있다.
관광객들도 떠들썩한 관광 대신 개별여행에서 지역과 소통하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 모(51)씨는 "제주 올레를 종종 방문하는데 밥집에서 안전한 숙소를 소개해주고 숙소에서는 여성들끼리는 걷기 힘든 곶자왈을 자원봉사자가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연결해줘 그 길이 새롭게 보였다"고 전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은 서로 엇비슷한 상품으로 경쟁하는 대신 특색있는 숙소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지역정보를 제공하고 지자체는 인허가나 관리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지역 관광자원을 연계해 공동체 전체가 상생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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