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윤정인 '정치하는 엄마들' 운영위원
“엄마들 목소리 반영해 보육정책 만들자”
육아 부담에 회사 관둘 수밖에 … “아이 자랐을 때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처음엔 제가 비정상인가 했어요. 어린이집에 맡겨 둔 아이를 데리러 회사를 나올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느끼면서 내 새끼 키우는데 왜 이렇게 벌벌 떨어야 하지 하면서도 나만 이렇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건가 했거든요. 그런데 장하나 전 의원님이 쓰신 독박육아 칼럼을 보면서 저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했죠. 정치하는 엄마들 준비모임에서 들은 말 중에 20년 전에 육아 때문에 일을 관 둔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도 세상은 똑같더라고. 자기 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는 게 너무 두렵다고. 그 말을 들으며 너무 공감이 됐죠.”
윤정인(32·사진)씨는 의약화학을 전공한 약학박사이자, 34개월 된 아들을 기르는 엄마이자, 육아부담에 회사를 관둬 잠시 경력단절여성이 됐지만 이력서를 넣으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취업준비생이기도 하다. 최근 출범한 엄마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운영위원도 맡고 있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사과정을 밟으며 아이를 낳아 기를 때에는 교수님의 배려로 어려움을 크게 느끼질 않았어요. 아이 데리러 가기 위해 칼퇴근 하는 데 대해 압박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달랐어요. 아이 데리러 갈 때마다 눈치 보고, 아이가 아플 때 남편과 번갈아 휴가를 내면 부인만 가면 되지 왜 남편이 휴가를 내느냐는 말을 남편이 들었다고 하고. 정말 급할 때는 서울에 살고 있는 엄마가 한밤중에 KTX 타고 제가 살고 있는 세종시로 날아와야 하는 일도 있고. 정말 전쟁이더라고요. 이런 줄 알았으면 아이를 안 낳았을 것 같아요.”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에는 윤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들었다. 여기서 ‘엄마’란 아이를 낳은 엄마만 칭하는 것을 아니다.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등 돌봄을 수행하고 있거나 향후 수행하고자 하는 모든 양육의 주체를 '사회적 모성'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엄마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씨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직장맘으로 살아 보니 나라에서 내놓던 보육정책의 비합리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를 위해 어린이집 운영시간을 늘리는 정책은 겪어 보니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엄마를 착취하는 정책’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엄마들이 아이를 늦게까지 맡겨 놓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저희 아이를 봐 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자기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이니 1시간만 아이 등원을 늦춰주시면 안 될지 부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분들도 아이의 엄마이고 아빠데 나라에서는 계속 그분들을 착취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그게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하죠. 아이를 오래 봐주는 보육기관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칼퇴근을 보장해주면 되는데 말이죠.”
윤씨는 남편과 함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을 하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었던 남편은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좋은 아빠가 되기는 힘들겠다는 고민을 하다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가 자랐을 때 조금은 세상이 달라지길 바라며 ‘정치하는 엄마들’에 참여한 윤정인씨 부부가 정부에 원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책이다.
“보육정책을 논의하는 곳에서 엄마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기르는 사람은 저희인데 정책은 저희가 모르는 곳에서 만들어지잖아요. 요즘은 어린이집 신청도 모두 인터넷에서 확인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정책을 보면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를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엄마로 한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양육의 당사자인데 그분들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거죠. 이런 정책도 아이를 기르고 있는 당사자들이 정책 논의 구조에 끼어 있었더라면 배려되지 않았을까요?”
[관련기사]
▶ 국회 앞에 선 엄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