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산업유산과 유휴공간, 녹색의 땅으로 되살아나다
매봉산자락 석유비축기지, 문화저장고로 탈바꿈
군부시대 1급 보안시설, 열린 문화광장으로
설계·시공부터 운영까지 시민 주도 '협치 모범'
서울시 "난지도 일대 생태문화복합공간 완성"
"가끔 가상으로 간첩을 침투시켜요. 못잡으면 난리나요. 항상 24시간 불안한 상태예요." "여기는 치유공간이에요. 공연이 없는 날은 '돌방석'에 앉아 고즈넉이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해질 무렵이 특히 좋습니다."
41년간 통제됐던 1급 보안시설이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산업화시대 에너지자원을 저장하던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에너지를 모으고 키우는 문화비축기지로 모습을 바꿔 지난 1일 문을 열었다. 쓰레기 산에서 공원으로 탈바꿈한 난지도에서 상암DMC를 잇는 생태문화복합공간이기도 하다. 설계와 시공단계는 물론 운영까지 시민참여로 이루어지는 협치 모범, 생태와 문화예술 사회적경제가 한데 어우러지는 새로운 공원문화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시대 폐기물을 새 자원으로 =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지난 1970년대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국내 경기가 흔들리면서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 1976년부터 3년에 걸쳐 건설됐고 그때부터 1급 보안시설로 지정돼 시민들 접근이 통제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대비해 상암동에 월드컵경기장을 지으면서는 '위험시설'로 분류, 2000년 11월 폐쇄됐다. 이후 일부 부지가 임시주차장으로 사용됐지만 10년 넘게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다.
인근 상암동에 첨단 디지털미디어단지가 들어서고 쓰레기 산이던 난지도 전체가 공원으로 탈바꿈된 이후까지 잊혀져있던 공간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박 시장이 현장을 방문하면서 서울시는 서울광장 10배가 넘는 공간의 잠재적 가치에 주목, 활용방안을 연구해왔다. 일반 시민과 학생 전문가들에게 아이디어를 묻고 공개토론회 등 수차례에 걸친 공론화과정 끝에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2014년 1월 기본구상을 발표한데 이어 그해 8월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을 선정하고 오랜 작업 끝에 문화비축기지를 완성, 지난 1일 시민들에 공개했다. 14만22㎡에 달하는 너른 부지는 문화마당(3만5212㎡)을 다양한 크기의 탱크 6개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산업화시대 유산인 석유저장고를 그대로 활용했다. 저장고 자체는 물론 내외장재와 옹벽, 현장에서 나온 돌덩이까지 문화비축기지를 꾸미는 자원이 됐다. 가솔린 디젤 벙커씨유 등을 보관하던 저장고는 원형을 최대한 살려 안팎에 공연장 강연장 전시실 회의실 등을 배치했다. 석유를 품었던 철판을 잘라 공연장 안전손잡이를 만들고 현장에서 얻은 돌로 계단을 만들었다. 특히 저장고 한 개는 주변 송유관이나 점검을 위해 드나들던 철 사다리 등 석유비축기지를 조성할 당시 모습을 그대로 남겨 미래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시민과 전문가가 요구했던 '친환경'은 문화비축기지 내 각각의 건물에 적용했다. 땅이 품은 온기를 활용해 냉·난방을 해결하고 화장실과 조경용으로 사용하는 물은 생활하수와 빗물을 재활용한다. 설계단계부터 녹색건축인증 우수등급과 에너지효율등급 최우수등급으로 예비인증을 받았다. 준공 후 본 인증을 받게 된다.
◆시민 주도형 도시재생 =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 방향을 시민이 결정했듯 설계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해 공간 배치는 물론 운영방안까지 결정했다. 설계자문 568명을 포함해 연인원 1126명이 24차례에 걸친 자문회의와 실무회의 41회에 참여했다. 이후 기획과 운영까지 민간 전문가와 지역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치위원회가 담당한다.
임정희 협치위원장은 "건물을 지어놓고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다른 시설과 달리 문화비축기지는 내용물에 건물을 맞췄다"며 "서울시와 시민간 협치뿐 아니라 시 내부에서도 생태 건축 문화 사회적경제까지 부서간 협치를 하는 새로운 모범을 만들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시는 문화비축기지 개관으로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 조성한 평화의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난지천공원,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상암DMC까지 연계하는 생태 문화복합공간이 완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 문화 예술 생태 등 다양한 분야 시민들과 함께 도시농부 청년창작자 사회적기업 등이 새로운 공간을 달굴 예정이다.
최윤종 푸른도시국장은 "산업화시대 유산에 담긴 역사·문화의 숨결을 보존하면서 새롭게 쓰임새를 전환한 도시재생 대표 모델이자 친환경 랜드마크"라며 "41년간 시민과 단절됐던 공간이 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이 모이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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