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주목받는 지자체·정책 |'기록의 도시' 수원

'사관제 부활'부터 '메르스 백서'까지

2017-10-25 10:52:50 게재

수원시, 지난 8년간 백서 36권 발간

지방자치박람회서 '기록행정' 소개

"수원은 정조의 개혁 의지가 담긴 도시이고, 그 상징 중 하나가 기록이었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그동안 발간한 백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수원시 제공

염태영 수원시장이 민선 5기 시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기록담당제' 도입이었다. 업무를 시작한 2010년 7월 2일부터 시장 집무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조치였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사관이 옆에서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해 후세에 전했던 '사관제도'처럼 집무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수원은 '기록유산'의 도시 = 조선시대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화성성역의궤'와 당시 창궐했던 역병의 치료·관리 일지가 담긴 '일성록', 정조대왕의 을묘원행(1795년)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수원 기록문화의 뿌리다.

실제 수원시는 세계기록유산인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바탕으로 수원화성을 완벽하게 복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었다. 수원화성이 축성 220년 후 미래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토대가 바로 '화성성역의궤'였다.

(좌)수원시 메르스 일성록 백서, (우)정조대왕 능행차 공공재현 백서

수원시는 이러한 '기록문화'를 이어받아 민선 5기부터 주요시정을 기록으로 남겨왔다. 지난 8년간 제작한 백서가 36권, 마을기록(마을만들기 백서)은 12권에 달한다. 백서만 해마다 평균 4권 넘게 발간한 셈이다. 백서란 정부 각 부처가 특정사안이나 주제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고하는 책이다. 대부분 지자체들이 그해 주요사업을 연감식으로 정리한 '시정백서'를 발간한다. 지자체가 수원시처럼 수십권의 백서를 발간하는 일은 흔치 않다. 김타균 수원시 홍보기획관은 "'의궤'는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의 독특한 전통으로, 기록을 철저히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려는 우수한 기록문화의 하나"라며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받아 수원시는 주요시책의 기획, 추진과정, 갈등해결과정, 뒷얘기 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스 교훈, '일성록'으로 남기다 = 수원시가 민선 5기 첫 백서를 발간하게 된 계기는 2010년 10월 29일 발생한 '흙탕물 수돗물 사건'이었다. 당시 3일간 4만4000여가구의 수도에서 흙탕물이 나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염 시장은 즉시 수돗물 공급 책임자로서 시민에게 사과하고 물성분 분석시험, 전문가 자문회의, 수질오염 원인분석 용역 등을 통해 사고의 원인을 추적했다. 그 결과, 경기도시공사가 광역상수도 5단계 연결 송수관 이설공사를 하면서 토사가 쌓인 새 관을 씻어내지 않고 기존 상수도관과 연결한 것이 원인으로 확인됐다. 염 시장은 이 일을 계기로 사고별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공무원 교육교재로 활용하기 위해 '수질오염사고 백서' 제작을 지시했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2015년 7월에는 '메르스 일성록'이라는 제목의 백서를 만들었다. 당시 5명의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수원시의 대처과정과 개선사항 등을 500쪽 분량으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당시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행정기관 간 엇박자, 초기 캐비닛에 내버려뒀던 감염병 대응매뉴얼, 부실했던 환자이송, 허술한 자가격리, 낮은 시민의식 등 지자체와 시민, 중앙정부가 반성해야 할 내용이 상당분량을 차지했다. 메르스 백서 제목에 붙은 '일성록'(국보)은 정조 대부터 순종 대까지 151년간 국정에 관한 제반사항을 기록한 임금의 일기로, 특히 정조 12년 도성에 창궐한 역병의 치료와 관리현황 등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제목에 '일성록'을 붙인 것은 정조처럼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서라도 훗날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염 시장은 "백서는 사업을 정리하는 보고서 양식으로 작성해선 안되며 사업전반은 물론 사업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기록해야 한다"면서 "백서는 단순한 기록물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전반은 물론 '사람'을 기록해야 한다 = 지난해 3월 발간한 '음주운전 근절 백서'는 최근 5년간 발생한 공직자 음주운전 적발 사례를 분석해 음주운전이 줄어들지 않는 원인을 제시했다. 이 백서는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환기하기 위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공무원의 고통과 후회 섞인 경험담 등 공무원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 공직 내부의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 '소통과 참여-시민참여형 도시계획 123일간의 발자취'(2012년 12월) '즐거운 도시산책 생태교통 수원'(2014년 8월) 'FIFA U-20 월드컵 2017 백서'(2017년 7월) 등 다양한 백서를 제작했다.

수원시 '기록행정'은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여수에서 열리는 '제5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에서 지자체 우수정책으로 소개된다. 수원시는 '기록은 민주주의다. 기록의 도시 수원'이란 주제로 우수정책관을 마련, '기록사관제'와 백서·마을기록·사진기록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되지 못할 일이라면 추진하지도 말라'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살충제 계란파동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 백서발간을 지시한 바 있다"면서 "모든 정책을 반면교사로 생각하고 백서 등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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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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